법원 "77세 운전자 신호위반 교통사고사...중대과실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중대과실로 사망, 의료비 토해내라"
재판부 "고령자, 돌발 대처능력 미숙...현저한 주의 위반 단정 못해"
2022-06-06 07:00:00 2022-06-06 07: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77세 고령의 노인이 신호를 어겨 발생한 교통사고를 두고 신호위반만으로는 중대한 과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행정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1부(재판장 강동혁)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A씨의 소송수계인인 유족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환수고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며 “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 중 ‘중대한 과실’이라는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교통사고 당시 만 77세의 고령이었고 일반인들에 비해 청각과 시각 능력이 저하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거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뒤떨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나아가 “블랙박스 영상 등에 의하면 사건이 발생한 교차로에 A씨가 운전하던 차량이 진입하기 직전에 빨간 불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연령과 건강상태, 비가 내리는 새벽 시간으로 시야가 밝지 않았던 교통사고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A씨는 정지신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교차로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중대한 과실이라는 건 약간의 주의만 했다면 손쉽게 위법하고 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를 간과한 때처럼 고의에 가깝도록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라며 “A씨가 과속을 했다거나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신호를 위반했다는 것만으로 현저한 주의를 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 2020년 5월15일 오전 5시30분경 인천 중구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신호등에 적색불이 들어왔는데도 교차로에 진입했고, 반대편 차선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교차로에 진입하던 B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B씨는 뇌진탕 등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A씨는 급성 외상성 경막하 출혈 등 3개월 이상 치료해야 하는 상해를 입고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초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공단은 교통사고가 A씨의 신호위반으로 발생했다며, A씨에게 지급된 의료급여 약 5500만원을 토해내라고 2020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통지했다.
 
지난해 1월말 유족은 공단 처분이 부당하다며, 공단이 2020년 12월 환수를 통지한 4830여만원을 되돌려 줄 수 없다고 공단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이를 기각했다. 유족은 교통사고가 A씨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했다고 볼 수 없고, A씨가 무의식 상태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보험급여 전부를 반환하는 건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고, 공단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시 서초구 행정법원.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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