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냉전과 핵 대피소 환상
2023-07-06 06:00:00 2023-07-06 06:00:00
1961년 7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핵 대피소 건설 계획을 미 국민에게 밝혔다. 소련의 핵 공격으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 국방 예산과 별도로 32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차원의 공공 낙진 대피소 건설과 함께 민간 대피소 구축 권유, 물과 음식, 의료품 등 비상용품 저장도 강조되었다.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했으므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방기할 수 없다는 것이 케네디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곧 이어 핵 대피소 건설을 홍보하는 팜플렛 2,500만 부가 전국 3만여 개 우체국에 배포되었고, 초기 예산 7억 달러가 의회에 제출되는 등 대통령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핵 대피소 프로그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핵 대피소 아이디어가 너무 순진하고 장밋빛 환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초기 정부 팜플렛의 설명은 시민들이 대피소 내에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2주만 지나면 마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낙진 피해뿐 아니라 폭발과 화재로 인한 위험, 방사능 제거의 불확실성, 식료품의 오염 문제 등에 대한 고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낙진 대피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안전 관념을 심어준다는 비판이 일었다. 마치 핵전쟁이 독감처럼 지나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핵전쟁에 대해 무책임하고 위험한 생각을 부추길 위험이 있었다. 협상과 타협을 백안시하고 경솔한 강경책을 고집함으로써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핵 대피소 프로그램이 미국 사회의 공동체 관념과 연대 의식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부각되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주택에 대피소를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도시에 몰려 있는 가난한 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럴 경우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상황에 직면하면 과연 부자들만의 대피소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부자 마을의 대피소에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민병대를 고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 등이 회자되었다. 라이프 매거진에서는 핵 대피소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라는 기사까지 실릴 정도였다. 일부 신학자는 강제로 대피소에 침입하는 이웃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공포를 먹고 사는 대피소 산업이 꿈틀거리고 당혹, 혼란, 히스테리가 번지면서 핵 대피소 이슈는 점점 추악하게 변질되고 있었다. 
 
사회적, 윤리적 논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낙진 대피소의 효용에 문제가 있었다. 1962년 분석에 따르면 핵 대피소 건설로 구할 수 있는 생명은 3천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여전히 1억 4천만 명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3천만 명을 생각하면 분명 가치가 있었지만, 1억 4천만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핵 대피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갔다. 케네디 대통령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소련이 핵폭탄을 늘리면 지하 벙커는 더 깊고, 더 견고하게 지어야 했다. 한마디로 끝이 없는 얘기였다. 뜨거운 감자로 변해 버린 핵 대피소 프로그램에 대해 케네디 행정부는 서서히 잠재우는 전략을 택했다. 의회가 예산을 삭감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효용성도 적고, 재정적으로 감당이 안 되며, 사회적 연대를 망가뜨리는 민방공 프로그램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냉전의 역사에서 사라졌던 핵 대피소 아이디어가 2023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 2월 8일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통합방위회의에서 핵 방공호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공공시설 건축, 아파트·상가단지 조성 시 핵미사일 대피 시설 의무화 방안과 다양한 지원책이 토의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서초동 고급빌라 트라움하우스 단지에는 지하 방공호가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 4층에 1톤 무게 철문으로 지어진 방공호에 주민 50명이 한 달간 살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외교 안보 고위직을 역임했던 한 전문가도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핵 대피소 건설을 촉구했다. 체제 존망의 위기에 빠지면 북한이 동반 자살을 할 수도 있으므로 상호확증파괴(MAD)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소 냉전 시절 미국인들이 씨름했던 어려운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서초동 일부 주민 50명이 아니라 5천만 전 국민을 보호하는 핵 대피소 건설을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는 강력하다.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핵미사일 시대의 무거움을 먼저 겪었던 이들의 시행착오와 통찰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핵 대피소 건설 제안에 대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줄곧 비판적이었다. 그는 핵전쟁의 비극을 막는 방법은 오직 소련이 핵 사용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있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소련이 내적으로 변화할 때까지 과민반응을 자제하며 핵 위협을 관리해 나갈 수 있는 냉철함이야말로 미국이 감당해야 할 진정한 과업이라고 본 것이다. 불필요하게 국민들을 겁주는 것은 위험하고 국가를 오도한다는 것이 2차 대전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의 생각이었다. 우리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무거운 짐을 견디며 이를 억제하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동반 자살이 두렵다고 방공호를 파는 것이 아니라, 동반 자살 상황을 만들지 않는 외교적 노력과 군사적 억제 태세에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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