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토의 확장과 유라시아 안보의 미래
2023-08-07 06:00:00 2023-08-07 06:00:00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토가 거듭나고 있다. 핀란드를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데 이어 200년 중립국 스웨덴까지 나토 가입의 문이 열렸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 온 튀르키예가 입장을 선회함에 따라 장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 전략적 압박이다.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로인 발트해가 나토에 의해 둘러싸이는 모양이 되고, 발트함대의 주둔지인 칼리닌그라드도 봉쇄를 당할 위험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게는 가입 신청국이 거쳐야 하는 절차인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허용한 것이다. 아울러 나토는 러시아를 겨냥한 유럽 방위 전략을 재정립했다. 러시아와 충돌이 발생할 경우 병력 30만 명을 30일 이내에 러시아 국경 근처 동부 전선에 배치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집단적 대응이란 원칙적 규정만을 갖고 있던 나토가 긴급 사태 발생 시에 취할 구체적인 병력 동원 계획을 냉전 이후 처음으로 마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과거의 유물이라고 조롱받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돌이켜보면 나토의 역사 자체가 경이적이다. 냉전이 가시화되던 1949년 나토는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2개 회원국으로 출범했다. 이후 냉전 동안 그리스와 터키, 서독, 스페인 등 세 차례에 걸쳐 확대가 있었으나 외양상 큰 변화는 아니었다. 폭발적 확장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 냉전이 끝난 후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필두로 계속 회원국이 늘어나 현재는 31개국이 참여하는 거대 다자동맹체로 자리 잡았다. 냉전이 종식되었는데, 소련 제국이 해체되고 상대역인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없어졌는데, 나토는 무슨 논리와 근거로 살아남았고 계속 팽창했을까? 나토 확장을 추동한 힘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동유럽의 안보적 두려움이다. 소련 제국은 사라졌지만, 러시아의 영향력 회복에 대한 두려움과 유럽에의 복귀 열망이 나토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둘째, 동유럽 및 발칸지역에서 파생되는 불안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탈냉전 시대 유럽 안보의 새로운 도전이 존재했다. 이를 위해 나토라는 서유럽의 안보 거버넌스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 논리가 작용했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여를 보장하고 러시아의 부상 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정치·안보적 기제를 미국으로선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토의 확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내려지고 있는가? 현재진행 중인 나토의 재강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토 확장의 당위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견해가 극명하게 대립한다. 서방의 주류 시각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존치와 확대가 옳았음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반대 관점은 나토의 확장이 오늘날의 푸틴을 만들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한다. 두 관점이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냉전 종식 후에 러시아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유라시아 안보 질서를 구축하는 데 서방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질서에서 러시아의 적절한 위치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것이 주요 이유였다. 러시아의 안보적 민감성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세력권 또는 완충지역으로 인정해 줄 만큼 러시아는 강대국인가? 이런 것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시각과 나토 확장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질문들이다.
 
러시아는 더는 초강대국이 아니다. 경제력은 중국의 8.3%, 미국의 5.5%에 불과하다. 러시아 경제는 제조업이 아닌 천연가스와 원유 등 자원 채굴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를 가장한 주유소”라는 비하적인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첨단기술 강국이 아니라 점점 더 부패하고 독재적으로 퇴행하고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영토가 걸쳐 있는 대국이며,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터키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행위자다. 무엇보다 미국에 버금가는 핵 강대국이며 재래식 전력도 이웃 국가들을 두렵게 할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 나토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실 자체가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러시아의 안보적 완충지역임을 방증하고 있다.
 
푸틴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러시아라는 국가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당장은 러시아 위협 때문에 나토의 재결집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나토의 창설과 강화가 역사적 소명에 부응한 것은 틀림없지만, 부작용도 컸음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봉쇄정책이라는 냉전의 전략을 설계했던 조지 캐넌은 냉전 종식 후에 이루어지는 나토 확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나토 확장이 러시아에서 민족주의, 반서구주의, 군사주의 경향을 촉발할 것이며, 러시아 외교정책을 미국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25년 전 그의 경고는 거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여파는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작금의 나토 확대와 강화 움직임이 유라시아와 글로벌 안보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시 한번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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