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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리도 없이’ 유재명 “현실은 더 끔찍하잖아요”
“익숙하고, 낯설고, 기묘하고, 충격적인 얘기…‘뭐지’ 싶었다”
“영화는 현실 비추는 의무 갖고 있어, 이제 논의는 관객 ‘몫’”
2020-10-18 00:00:00 2020-10-1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말 이상한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이상했고, 그 역시 이상했다고 한다. ‘이상하다는 질문에 기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못한 수긍이 아니라, 그건 분명히 당연하다는 의미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전한 말도 당연하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익숙하지만 낯설었단다. 낯설었는데 또 기묘했단다. 기묘한 것 같으면서도 충격적이었다고. 충격적인 관점이 많은 데 또 웃기기도 했다니. 결국 마지막에 유재명은 대체 이게 뭐지싶었다며 시나리오 마지막 장을 덮었단다. 당장 이 감독이 연출했던 단편 영화를 찾아서 봤다. 보통이 아닌 내공이 느껴졌다. 묵직하고 덩치도 큰, 그리고 좀 험상궂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 감독을 연상했다. 하지만 유재명 앞에 나타난 감독은 지극히 평범한 여성 감독님이었단다. 이렇게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또 화면을 가득 채운 미장센, 신념이 가득하게 느껴지는 예술가 적인 느낌의 글. 유재명이 소리도 없이에 반하지 않을 이유는 단 1도 없었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런 시나리오는 배우로서 놓쳐선 절대 안될 작품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유재명이다.
 
배우 유재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서울 삼청동에서 유재명과 만났다. 워낙 독특한 설정과 기묘한 분위기가 압권인 소리도 없이에 대한 평가를 가장 궁금해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대중성은 모르겠다. 하지만 독특한 설정인 것만큼은 너무도 눈에 띈다는 평가에 눈빛을 집중했다. 그는 이런 평가에 완벽하게 수긍할 수 있다면서 일반 관객 분들의 반응은 어디로 향할 지가 가장 궁금해 미칠 것 같다고 웃는다.
 
저도 정말 꽤 많은 작품을 해왔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 영화만큼 관객 분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한 작품은 처음이에요.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작품보다 호불호가 갈릴 것이란 점에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와의 인연은 정말 운명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글쎄요. 정말 심하게 쉽게 읽혔어요. 특히 지문이 되게 많았어요. 도대체 뭔 영화가 나올까 너무 궁금했죠.”
 
이미 소개된, 개봉 전의 이 영화 정보를 취합해 보면 유재명이 연기한 창복은 유아인이 연기한 태인과 함께 범죄 조직의 뒷처리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끔찍하고 악몽 같은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럼 두 사람은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물이어야 할 듯싶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은 예상과는 정반대다. 소심하기도 하면서, 또 어리바리한 면도 강하다. 그냥 뭐지싶은 인물이다.
 
배우 유재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하하하, 맞아요. 도대체 이 사람은 뭐지? 싶은 그런 느낌이에요. 영화의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인물들이죠. 하루하루 계란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 청소하자 문자 보내면 둘이 그 현장에 가는 사람. 특별한 무슨 신념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사람. 그냥 극단적으로 평범한 인물이죠. 반대로 이태원 클라쓰의 장회장 같은 인물은 극성이 아주 강하고 분명했죠. 그럼 창복? 완벽하게 정 반대였어요.”
 
선과 악이 붕괴된 세상이 등장한다. 그 안에서 표면적으로 창복과 태인은 가장 나쁜 일을 일상처럼 영위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 짓(?)을 통해 먹고 사는 호구지책을 해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우연한 사건, 즉 유괴에 연루가 된다. 급기야 본인들이 그 아이를 유괴한 유괴범으로 몰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 창복과 태인은 나쁜 인간, 즉 악인인 것인가.
 
글쎄요. 어떠세요(웃음). 창복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세요. 하하하. 제 생각은 뭐랄까. 이 영화 속 모든 상황과 모든 인간들이 딱 경계에 머물러 있다고 봐요. 소재적으로 저흰 범죄를 다룬 영화는 맞죠. 다른 장르 영화, 즉 장기 인신매매 또는 시체가 나오고 피가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 우린 어떤 영화적 관성에 묻히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와 재미있다’ ‘와 흥미롭다등등. 근데 우리 영화는 어떤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창복과 태인이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 악인? 정말 그럴까요(웃음) 개봉 이후 관객 분들의 평가가 정말 궁금해요.”
 
배우 유재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유재명은 굳이 창복이란 인물을 선과 악의 경계에서 구분해야 한다면 선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단다. 물론 그 의 반대 개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단 전제를 하고서 말이다. 사실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질문이자 대답인 것 같단다. 좀 더 쉽게 접근하자면 창복은 자신의 일에 죄책감 정도는 느끼고 있는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 이후는 오롯이 관객들의 몫으로 전했다.
 
창복의 대사를 유심히 들어보시면 최소한 이 사람이 어떤 심성과 내면 그리고 인간성을 지닌 인물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태인에게 항상 주어진 일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주입시키고, 돌아가신 분들 처리할 때는 머리는 북쪽이다며 예의까지 중시하죠. 스포일러이기에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묘한 배경을 두고 창복의 모습을 잡아낸 장면도 생각해보세요. 하하하. 글쎄요. 저도 그렇고, 감독님도 창복이 그리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하시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고. 특히 유재명은 앞서 소화했던 수 많은 작품 속에서 인물을 만들어 낼 때 유독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인물의 서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가 바로 유재명이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인물의 숨은 서사가 결국 인물의 드러나는 지점을 채우는 것이란 연기 지론이 확고한 유재명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그 신념이 깨졌다. 그리고 스스로도 뭔가 깨우치게 된 기회였다고.
 
배우 유재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말 감독님에게서 큰 걸 배웠어요. 전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그 인물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하는 배우에요. 감독님과의 몇 번의 미팅을 통해서 그런 점을 어필했죠. 현장에서도 그랬고. 우선 창복이 한쪽 다리가 불편해요. 왜 그럴까. 나름대로 서사를 만들어갔죠. ‘감독님, 창복은 아마 이래서 그랬고, 저래서 그럴 것 같아요라고. 그때 감독님이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지금 현재가 중요한 데라고. 뒷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았죠. 제가 느낀 그 기묘한 분위기. 그 열쇠가 풀리는 순간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과거와 또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 눈 앞에 지금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또 박차고 나가는 영화가 바로 소리도 없이. 물론 세상의 아이러니가 담긴 얘기이며, 그 안에선 붕괴된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창복과 태인 모두 그들의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또 무엇이 그른 일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있을 것이다.
 
배우 유재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속 현실도 정말 끔찍하고 충격적이죠. 하지만 자연인 유재명으로서 보자면 전 현실이 더 무서워요. 더 공포스럽고. 자신의 어떤 과오를 뒤덮기 위해 어린 아이를 죽이고 때리고 폭행하는 뉴스를 우린 숱하게 보고 있잖아요. 반대로 우린 영화에요. 판타지이고. 근데 현실을 더 척박하게 비추는 게 영화의 의무라면 우린 그 의무를 다할 분명한 메시지 정도는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제 우린 많은 대화와 논의 그리고 생각을 하는 시간을 소리도 없이를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얻게 되시길 전 바랍니다. 그럼 전 너무 감사할 듯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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