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규칙이 있다. 우선 ‘왜?’를 끝까지 숨긴다. 관객이 던질 수 있는 권리를 처음부터 차단시킨다. 그건 영화적 궁금증을 자극하는 장치이면서도 몰입을 끌고 가는 동력으로서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유’도 드러나지 않는다. ‘왜?’란 질문이 해결되면 그 해답의 ‘이유’가 필요하다. 반대로 ‘왜?’가 드러나지 않지만 ‘이유’를 먼저 드러낸 영화도 있다. 이번에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숨겼다. 통상적으로 이런 형식으로 끌고 가는 영화들은 폐쇄 공간을 또 하나의 규칙으로 설정한다. ‘왜’ 갇힌 공간에 그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의 해답이 나온 이유는 무엇인지. 이 모든 게 해결되면 그 영화는 결말을 드러낸다. 영화 ‘레벨16’의 기본 골격이 이렇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이다. 외부와의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15세 미만의 어린 소녀들만 존재한다. 그들은 똑 같은 옷을 입고 똑 같은 규칙을 적용 받는다. 이름도 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들의 이름이 익숙하다. 과거 영화계를 주름잡던 여성 영화배우들의 이름이다. 자신들의 이름이 그런 뜻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규칙을 통해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가 세상의 하루와 똑 같은 시간으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 공간을 ‘학교’라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은 이미 망했다. 그들은 선택 받은 소수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일과는 단조롭다. 여성으로서의 단정함과 정숙함만을 강조하는 영상 수업. 정해진 일과에 정해진 단조로운 일을 하는 그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망해 버린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라 믿는 정체불명의 ‘비타민’ 복용.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는 감옥 같은 다인실 숙소에서의 취침. 숙소 천장에는 빛을 내는 둥그런 달이 떠있다. 지금은 밤이다. 그 달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들은 시간도 날짜도 그 어떤 것도 알 지 못한다. 심지어 글도 모르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 공간에 있었는지, 도대체 왜 이들은 여기 있는지.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저 있어야 하니 있는 것이다.
영화 '레벨16' 스틸. 사진/(주)제이브로
하지만 균열은 언제나 존재한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견고한 벽은 의외로 작은 틈 하나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갇힌 소녀들 중 ‘소피아’가 이 공간이 가진 비밀의 실마리를 잡은 듯 하다. 한때는 절친이던 ‘비비안’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비비안과 소피아는 과거의 절친일 뿐이다. 두 사람은 불신으로 얽혀 있다. 사실 그 불신은 이 공간이 만들어 낸 오해다. 물론 오해 역시 의심이다. 이 공간이 만든 규칙 속에 존재한 관계의 법칙은 역설적으로 공간 자체를 옥죄어 버린 모양새가 됐다. 소피아의 의심, 비비안과 소피아의 대립. 그리고 의심과 대립은 결국 ‘확인’으로 치닫게 된다. 소피아의 의심은 ‘거의’ 사실이었다. 비비안 역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정말 세상은 망한 것인지. 사라지는 소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정말 행복한 삶을 찾아 간 것인지. 우리들은 이 공간에 갇혀 도대체 뭘 하는 것인지. 아니 갇힌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갇혀 있길 원하는 것인지.
‘레벨16’은 언뜻 폐쇄 공간을 무대로 한 일종의 밀실사건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소녀들은 이유도 모른 채 이 공간에 갇혀 있다. 이 공간은 ‘학교’로 불린다. ‘브릭실’ 선생의 통제하에 모든 소녀들은 강력한 감시를 받는다. 건강을 위해 하루 한 번 비타민을 처방 받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모두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바깥 세상을 본 적도 없다. 갇힌 공간에는 창문 하나 없다. 철저하게 이들은 세상과 단절됐다.
영화 '레벨16' 스틸. 사진/(주)제이브로
이 공간은 ‘베스탈리스’라 불린다. 사전적 의미는 ‘깨끗한’ 혹은 ‘순결한’이다. 이 곳은 일종의 기숙학교다. 그들은 하루 종일 여성의 순결과 정숙에 대해서만 강압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의심과 궁금증은 불결한 것이라고 주입 받는다. 그들은 흡사 갇힌 공간에 자리한 가축처럼 보인다. 양질의 고기를 얻기 위해 억지로 먹이를 먹이고 움직임을 최소화시켜 키우는 육중한 몸의 소와 돼지. 사육사에 의해 억지로 먹이를 주입 받아 스트레스로 비대해진 ‘간’을 사람들에게 이 세상 최고의 진미라고 불리는 ‘푸아그라’로 공급하는 축사의 거위 떼들. 흡사 이 소녀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비춰진다. 그들은 무엇엔가 속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벌을 받기 위해 사라지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안전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남아 있는 그들은 불안하고 또 의심스럽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한다. 이 공간의 진짜 비밀을.
영화는 그 자체로 스포일러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이 공간은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공간에 갇힌 소녀들은 모두가 통념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강요 받는다. 그들은 그렇게 재단되고 길러진다.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들은 순수하게 그것도 가장 순수하고 순결한 방식으로 모든 것이 사육된다. 소녀들은 인간이기에 앞서 보고 듣고 즐기고 먹고 자는 감각의 수용체로서만 허락된 존재로 그려진다. 흡사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하며 어쩌면 영원히 존재할 지 모를 무의식의 관념 속 여성성에 대한 남성들의 강압적 욕구를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영화 '레벨16' 스틸. 사진/(주)제이브로
공간의 이름이 ‘베스탈리스’란 점, 그리고 소녀들의 이름이 이 세상 남성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은막의 스타들이란 점, 무엇보다 사회성을 통제 당한 채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관계성마저 상실된 그들의 존재는 의아함을 넘어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당사자의 의도성에 섬뜩한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여성으로서 이 세상이 요구하는 의미,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받아 들여야 할 때 지키고 가져야 할 목적, 여성으로서 궁극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목적 등. ‘레벨 16’이 그리는 기상천외하면서도 끔찍하고 또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라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모두의 숨은 목적을 그린 주제가 날카롭다.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다’는 해석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기존 페미니즘의 성격을 완전히 전복시킬 만한 ‘레벨16’의 한 컷으로 꼽고 싶다. 반대로 이 영화의 끔찍한 진실은 현 시대의 곪아 터진 상처를 향해 꺼내 든 날카로운 메스의 칼 날이다.
영화 '레벨16' 스틸. 사진/(주)제이브로
여성의 서사와 여성의 주체성을 향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해도 이 영화는 관통하는 방식을 유지한다. 이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강력한 한 방이다. 10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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