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넬, 천상의 음성 ‘코로나 심연’ 걷어내다
정규 9집 발매 기념 공연 ‘Moments in between’
공간감 어린 여백과 화려한 조명 오가는 기승전결 구성
“각자의 자리서 버티길…행복하진 못하더라도 불행하지 말기를”
입력 : 2021-09-16 17:47:33 수정 : 2021-09-17 07:26:3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공연 뒤 만난 넬의 네 멤버들, 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은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흠뻑 땀에 젖은 채 쏜살같이 지나간 지난 3일을 ‘복기(復棋)’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박수 외엔 직접적인 피드백을 느끼지 못하니까, 답답하긴 하죠.”(김종완) 
 
22년 간 무대에 올라온 이들조차 코로나 시대의 공연 문화에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는 반응이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아쉬웠던 부분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다음에는 스피커로 함성 소리를 틀든 필요할 것 같아. 너무 조용하니까.” “아님 그거 어떨까. 왜 예전에 방송에서 하듯 ‘버튼을 눌러주세요’ 하는 거지. 전광판에 반응이 나타나면 재미 요소도 있을 것 같고.”
 
팬데믹 환경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조하려는 그들을 보면서, 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이들 공연이 독보적인 브랜드가 됐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넬의 공연은 사운드와 무대 조명, 감각적 영상, 연출로 정평이 난지 오래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브랜드 공연 ‘CHRISTMAS IN NELL'S ROOM’이 다이나믹한 기승전결 구성이라면, ‘NELL's SEASON’에서는 계절 감각에 어울리는 감성적 연출, 구성을 느껴볼 수 있다. 봄에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 가을에는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어쿠스틱 편곡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왔다.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NELL's SEASON: Moments in betwee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10일부터 이날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이 곳에서 진행된 공연(‘NELL's SEASON: Moments in between’)은 밴드가 올해 처음으로 여는 단독 콘서트다. 지난해 ‘LET THE HOPE SHINE IN’ 이후 1년여만. 코로나 장기화로 스튜디오에만 박혀 있다 내놓은 신작 9집(‘Moments in between’) 전곡을 실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원래 음악만 쭉쭉 하는 공연을 준비를 했었는데, 여러분들이 소리를 내지 못하시니까 너무 적막하고 삭막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얘기를 편하게 해보는 그런 느낌의 공연으로 가자 결정했어요.”
 
7시 정각, 어둠 속 등장한 멤버들은 음악 대신 말로 첫 문을 열었다. “정말 흔치 않은, 말이 많은 공연이 될 겁니다. 굉장히 신나는 공연이 되기도 할 거고요.”
 
피아노 건반과 목소리로만 재편곡한 ‘마음을 잃다’가 시작부터 고요한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멀어지다’부터 슬로우템포로 겹쳐지는 아르페지오와 라이드심벌, 하이햇의 구슬픈 리듬 새김이 잔잔한 울림의 공명을 일으켰다. 
 
단출한 악기편성으로 넬 레코드 특유의 공간감이 살아나는 곡들이 대체로 초반부 편성됐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의 씁쓸한 가을날 미풍 같은 원곡 현악 소리들이 다가올 때, 듣는 이로서는 과거 이들이 녹음했던 뉴욕 ‘아바타스튜디오’에 앉아 듣는 것처럼 몰입도가 높았다. 지난해 여름, 여러 차례 공연을 준비하고 뒤엎길 반복하던 넬 김종완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당시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코로나 이후 공연 문화에 관한 이야기 중 “차라리 조용한 느낌의 공연을 구성하는 것도 지금 상황엔 더 적절할 수 있겠다”고 한 바 있다.
 
코로나 방역 지침 탓에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관객들, 그 묘한 긴장감의 홀 분위기를 보며 그때의 대화가 생각났다. 잔잔한 연주들이 지휘자고, 관객들이 연주자처럼, 하나의 하모니를 내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NELL's SEASON: Moments in betwee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중반부부터는 ‘크래시(Crash)’를 시작으로 9집 (‘Moments in between’) 전곡을 실연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교통사고처럼 다가오는 인연의 시작부터, 설레임과 끌림, 망설임, 위태로움 같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주의 기법으로 채색한 앨범이다. 이날 라이브로 듣는 10곡은 앨범처럼 시간 순에 따라, 감정의 주파수를 출렁이며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밴드는 줄곧 우주의 추상적이고도 공간이 넓은 느낌을 사운드스케이프 측면에서 구현하려고 해왔다. 이번 신보에서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유희’가 대표적인 곡. 가상악기와 리얼악기(베이스, 기타, 드럼)가 최상의 균형을 찾아가는 모던록 풍 곡에서는 ‘습관적 아이러니’, ‘오분 뒤에 봐’ 같은 곡들에서 펼쳐보였던 몽환성이 아른거린다. 
 
반짝반짝 별가루를 뿌린 듯한 악기들의 연주가 ‘고장난 마음’과 ‘아름다운 유희’ 사이를 넘실거릴 때, 여린 미성은 겹겹이 쌓는 더블링의 화성으로, 음률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중 발화했다. 이날 무대에는 파란색 LED 배경의 뒷조명, 하늘로 향하는 형형색색의 레이저와 꽃가루 연출로 곡이 지닌 확장성, 입체성을 표현해냈다.
 
오프라인 공연의 최대 장점은 귀로만 듣던 음악을 시각으로, 물리적 실체로 보고 느낀다는 데에도 있다. 이날 ‘파랑주의보’, ‘말해줘요’의 브릿지 파트 때 넘실거리는 기타의 공간계 사운드가 ‘보는 음악’이 될 때 그랬다. 공연장 좌우 달린 커다란 스크린이 기타 프랫 위를 부드럽게 꿈틀거리는 손가락을 클로즈업할 때, 사운드는 생동했다. 샘플러를 두드리는 ‘Sober’ 때 드라이아이스가 끼고 천둥 소리가 나던 연출의 무대에서는, 제임스 블레이크나 더엑스엑스에 뒤지지 않는, 습기 가득한 무채색의 새벽 공기 같은 감성이 아른거렸다.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직접 관람한 ‘NELL's SEASON: Moments in between’.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저희에겐 이번 신보가 지금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게 해준 음반입니다. 이제 저희 손을 떠나 여러분에게 갔으니 그 기운을 이어 받아 생각이나 마음 정리가 되지 않을 때 한 시간 남짓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김종완)
 
주로 차분한 질감의 사운드가 주도하던 이날 공연은 일렉 기타 2대가 또랑거리는 신스, 둔탁하게 꿈틀거리며 질주하는 베이스, 드럼 소리에 뒤섞이며 반전됐다. 제3막이 재차 오른 느낌. ‘Love it when it rains’, ‘Dream Catcher’, ‘Glow in the dark’, ‘All this fxxking time’, ‘Ocean of Light’까지 꿈에 관한 가사들이 오르내리는 빠른 템포의 곡들이, 코로나 블루로 물든 오늘날의 텁텁함을 순간이나마 지워버렸다.
 
“돌아보니 요즘 시대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많더라”던 밴드는 앙코르 첫 곡으로 ‘숨’을 택했다. 단출한 건반의 타건과 목소리가 다시 홀에 깊은 공간감을 조성하며 ‘숨’ 죽인 관객들에게로 가 닿았다.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NELL's SEASON: Moments in between’.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소위 말하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계신 분들이 있으면, 혼자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들 버텨줬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불행하지 않게, 그렇게 잘 살아가다가 또 뵙게 되길 바라겠습니다.”(김종완)
 
다시 두번째 앙코르 곡 ‘12seconds'의 8분50초 가량 되는 황홀경의 시간.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천사 같은 음성과 명멸하는 조명에 기대, 이 지독한 감염병이 종식된 미래의 어느 날을 홀로 상상했다. 
 
‘지난해 12개 미국투어를 중단한 넬의 공연이 재개된다. 부드러운 캘리포니아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맥주를 들고 따라가 있을 것이다. 판테라와 스티비 레이 본, 블루스의 고향 텍사스도, 지미 헨드릭스의 고향이자 펄펄 끓는 그런지의 시발점이 된 시애틀도 OK. 공연 중간 자리쯤 위치해, 이 곡의 장엄한 현악에 내 몸을 뉘인 뒤 기억할 것이다. 오늘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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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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