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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찬란한 눈부심과 경외감
14세기 프랑스 실존했던 결투-인물, 낯뜨거운 기사도 정신과 명예
1장부터 3장까지 진실 바라보는 각기 다른 세 사람, ‘남성 vs 여성’
2021-10-14 00:01:01 2021-10-14 00:01: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리들리 스콧 감독 작품이다. 그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은 빛나는 아우라와 착각의 베일을 동시에 담고 있다. 빛나는 아우라는 전 세계 상업 영화 감독들이 추앙하는 감독들의 감독이란 찬사다. 1937년생으로 올해 84세인 그는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전해 주는 착각의 베일은 기이한 기대감이다. 남성미가 폭발하는 마초적 캐릭터들의 향연이 펼쳐진 그의 전작들은 리들리 스콧의 대표성이다. 하지만 그가 창조해 낸 에일리언세계관을 떠올려 보라. 사실 그는 주체적 여성상에 대한 영화적 창조성을 집중해 온 보기 드문 연출자다. 그의 초기작이면서도 레전드 걸작으로 추앙 받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려만봐도 그렇다. 그래서 라스크 듀얼: 최후의 결투가 중세 기사도 그리고 명예를 위한 목숨 건 대결로 압축될만한 이미지 위에 착각의 베일을 뒤집어 쓰고 숨은 한 여인의 진짜 용기를 주목해야만 한다. 사실 포스터 속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한 세계관에서의 남성들을 숨은 이면이 있다. 14세기 중세 시대란 것을 전제로 깔고 시선을 고정함에도 그들은 모두 어리석다. 우스울 뿐이다. 그리고 무의미할 뿐이다. 이런 점은 중세 문학에 원론적 정수를 제공해 온 기사도자체가 사실은 우매한 남성성의 과시욕 그리고 이름만 남게 되는 명예 위에 존재한 거짓이었단 점도 들춰낸다. 이런 점은 오롯이 리들리 스콧이란 거장의 눈을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갖춰야 할 스케일과 압도적 영상미가 아닌 세밀하게 직조된 진실과 이면의 교차점 속에 자리한 진짜를 주목하게 만든 거장의 핀 포인트를 일궈낸다.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은 이미 존재해 왔다. ‘글래디에이터의 웅장함, ‘킹덤 오브 헤븐의 스케일, 그리고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신화적 판타지 등. 하지만 그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 주목한 지점은 앞선 자신의 시대극 모두를 지워버리게 한다. 그는 700년 전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통해 지금 현실이 담아야 하고 주목해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시대극이 파괴해 버린 온전한 현실극이다.
 
배경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4세기 프랑스. 명문가문 카루주의 장남 장(맷 데이먼)과 그의 친구 자크(아담 드라이버)는 둘 도 없는 절친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창을 겨눈다. 전쟁터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 주고 서로를 위해 칼을 들고 피를 뿌리던 두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목숨을 건 결투의 장에 들어섰을까. 그 이유는 의 시선 그리고 자크의 시선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 결투의 이유이자 원인이 된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코머)의 시선으로 처리된다. 장과 자크의 대결로 시작한 영화는 이후 총 3장에 걸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이들 두 사람의 결투 이유를 전한다. 기사로서 목숨보다 중요한 명예, 하지만 그 시절 기사들에게도 진정 명예보다 더욱 더 중요했던 실리, 하지만 그 두 가지 가치 위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진실의 싸움은 가혹할 정도로 잔인하게 묘사된다. ‘묘사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중세 시대에선 현실이었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먼저 1장은 장의 시선이다. 명문가 자손이지만 권력과의 관계 그리고 처세에 능숙하지 못했다. 흡사 아둔할 정도였다. 그는 또 다른 권력가 피에르(벤 에플렉)의 눈 밖에 난 상태다.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끊임없이 전쟁에 참가하면서 명분을 쌓았다. 명분만으론 집안을 일으킬 수 없다. 그는 반역자이지만 부유한 집안 딸 마르그리트와 혼인 한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집안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그의 이런 집착은 절친 자크가 원동력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점점 더 자크는 피에르의 눈에 들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만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 친분이 갈등으로 변질된 순간은 자크가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겁탈하면서부터다. 장은 당연히 분노한다. 하지만 그 분노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자크를 향한 분노인지, 자신보다 못한 집안 출신이면서 자신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자크가 자신의 아내마저 취한 것에 대한 분노인지 불명확하다. 어느 쪽이든 장은 자크를 용서할 수 없다. 장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프랑스 왕에게 자크와의 결투를 요청한다.
 
1장의 과정은 중세 기사도 문학의 정수를 이끌어 온 듯하지만 아니다. 우매한 남성성의 허울 그리고 그 허울이 유지시켜주는 그 시대 남성성의 존재하지 않는 실체인 명예에 대한 무의미함을 지적한다. 흡사 상황적 묘사와 작화가 코미디의 그것과 흡사할 정도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자크의 시선도 보자. 2장이다. 그는 과는 달리 보 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이다. 그는 원래 권력 지향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지역 권력자 피에르 눈에 들게 됐다. 장과 함께 참가한 전투에서 누구보다 거칠고 폭력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자격지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을 쫓지만 권력에게 예쁨 받지 못하는 장과 점점 더 거리를 두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향한 망상은 따지고 보면 합당한 착각일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남성성 그리고 자신의 자아적 존재감에 도취한 그는 마르그리트가 자신을 사랑한다 믿는다. 그리고 그를 겁탈한다.
 
2장의 기묘함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다. 누가 봐도 자크는 기혼자를 겁탈한 범법자다. 하지만 그는 중세 시대를 지배한 종교의 적극적 비호를 받는다. 권력과 종교의 기묘한 관계 그리고 권력과 종교를 점유했던 부패함이 기묘함의 정체다. 2장은 그걸 폭로하는 과정이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리고 마지막이다. 3장은 마르그리트의 시선이다. 이 장의 부제는 진실된 이야기. 사실상 피해자인 마르그리트의 시선이 사실은 숨은 진실이란 얘기다. 관객들은 3장까지 이어지는 동안 장과 자크, 두 사람의 반목에 집중하고 이유를 찾으려 하며 각자 정의와 불의에 대한 논쟁을 스스로의 내면 속에서 격돌 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르그리트는 논외 대상이었다. 이 점이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가 지닌 최종이고, 그 최종이 담은 실체다. 여성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논외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마르그리트는 자크의 겁탈에 상처 입었다. 자크가 범인이다. 하지만 자크만이 범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반역자 집안 출신으로서 사실상 정략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마르그리트는 장과의 결혼 생활 동안 끔찍할 정도의 폭력적 성관계를 요구 받아왔다. 장이 마르그리트를 대하는 태도는 상식을 넘어선 순간을 관객들과 접하게 만든다. 이런 점은 자크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장과 자크 둘 다 마르그리트란 여성성에 대한 도구화 소유화를 주장하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부르짖는 기괴한 행태를 선보이는 위선자들인 셈이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때문에 영화 시작 오프닝 시퀀스이후 드러나게 된 장과 자크의 대결을 담은 20분 분량 엔딩 시퀀스는 두 남자의 처절한 대결이 눈길을 끌지만 그 처절함의 상징은 피해자이면서도 쇠사슬에 묶인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마르그리트의 내면과 더 맞닿아 있다.
 
허울이란 단어 조차 민밍한 수준의 명예를 부르짖으며 죽음을 놓고 사생결단 대결을 펼치는 장과 자크의 모습이 우스울 정도다. 명백하게 겁탈을 당했다. 하지만 남성성이 지배하던 시대다. 남성을 모욕했단 종교의 자의적 해석이 만든 판단에 마르그리트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장과 자크에게 맡겨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희생자가 된다. 남편 장이 승리한다면 그는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자크가 승리한다면 그는 화형을 당한다. 남성을 향한 명예 훼손이 이유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무려 153분의 러닝타임이다.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했다. 그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압도적인 비주얼과 서사를 끌고 온다. 하지만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체득이란 단어로 표현되기 힘들 정도로 전작들과 기이한 차이를 보인다.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 영화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긴 이 거장의 시선은 실존했던 시대극조차 자신의 아우라로 뒤덮어 버리는 힘을 발휘한다. 시대극이 리들리 스콧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찬란한 눈부심이다. 그게 바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오는 20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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