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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강릉’, 거친 파도만 기억에 남는다
20년 전 유행 ‘건달’ 소재 그리고 낭만과 야만의 비유 표현
주제와 표현만 남은 스토리, 소재만 두드러진 연출의 결과
2021-11-07 00:00:01 2021-11-07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낭만을 얘기한다. 낭만, 정말 좋다. 낭만을 잃어버린 시대에 낭만을 얘기하는 것에 어찌 돌을 던지랴. 하지만 그 낭만이 낭만으로서의 기능을 못하니 말하고자 하는 낭만은 온데간데 없다. 그저 남아 도는 건 거친 남성들. 만들어진 남성들. 감독이 만들어 낸 작화남성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낭만이 낭만으로 다가올 리 만무한 이유다. 무엇보다 지금은 충무로 상업 영화 시장에서 화석화된 소재 건달’(깡패)을 끌어 와 낭만을 얘기한다. 공감의 깊이와 이해의 넓이 측면에서 받아 들일 수 있는 결과물은 아닐 듯싶다. 얘기 스타일도 20년 전 건달 소재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여러 측면에서 안타깝다.
 
 
 
제목처럼 강원도 강릉이 무대다. 이 지역 최대 리조트 건설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조직이 격돌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 내분, 남자들의 야망과 음모 배신이 결합하면서 우리가 예상하는 액션이 더해진다. 흐름은 뻔하고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다.
 
두 조직이 등장한다. 먼저 강릉을 무대로 활동하는 조직의 리더 길석(유오성)은 의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남자다. 그를 믿고 따르는 동생들과 조직원들도 많다. 길석의 조직은 이미 은퇴한 회장이 길석을 포함해 사실상 삼형제나 다름없는 후배들에게 물려줬다. 첫째는 무상(김준배) 둘째가 길석 그리고 막내가 충섭(이현균)이다. 길석은 첫째 무상에 대한 예우 그리고 막내 충섭에 대한 이해를 하며 조직의 안위를 이끌어 간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길석 삼형제가 이끌어 가는 강릉 지역 그리고 그들 조직이 운영하게 될 리조트 사업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뜬금 없는 외지인이 등장한다. 길석 조직이 운영을 맡게 될 리조트 아스라운영권을 노린 민석(장혁)이 서울에서 내려온다. 민석은 길석과는 전혀 다른, 정 반대 지점에 선 인물이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끔찍한 과정과 피비린내 뿌리는 과정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민석은 그저 목적을 위해서만 직진하는 인물이다. 그에겐 목적이 있고 과정이 존재하며 결과만 남아야 한다. 그런 민석을 길석이 막아야 한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릉은 건달 혹은 깡패 얘기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얘기. 느와르 장르가 그걸 소화했다.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선 느와르가 깡패 소재 영화로 둔갑해 버린 채 소비돼 온 경향이 많다. ‘강릉은 이런 흐름과는 분명 다르다. 낭만이 사라진 야만의 시대를 비유한 건달, 즉 깡패들 세계가 이토록 의리와 가족애가 넘친다면 현실이 오히려 더 영화적이란 반어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그걸 노렸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충무로 영화계 연출 작법일 뿐이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릉에는 얘기가 있지만 얘기가 없다. 영화 자체를 끌어가는 스토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 스토리가 스토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강릉은 얘기가 없는 영화처럼 다가온다. 민석의 무자비한 직진본능, 그리고 길석의 건달스럽지 않은 인간미 넘치는 인품. 지역 내 건달 조직과 경찰의 암묵적 결탁, 조직 내 서열을 위한 배신 등은 이미 낡고 낡은 소재일 뿐이다. 낡은 소재를 끌어와 낡지 않은 얘기를 만들어 내겠단 시도 자체가 더 영화적일 듯하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장면과 장면을 이어가는 맥락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배우들이 만들어 낸 인물 자체가 기능적 역할조차 못하니 스토리 자체 동력도 힘을 얻기 고단하다. 폭풍전야 속 거친 강릉 바다의 파도, 영화 전개에서 등장하는 몇 개 이미지 샷이 오히려 강릉의 기본 골격을 전하는 가장 좋은 씬(SCENE)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길석을 연기한 유오성은 여전히 이 장르에선 대체 불가다. 20년 전 친구를 통해 이 장르에 발을 들인 그는 그 자체로 장르이면서 얘기가 되고 인물이 된다. 영화 전체 완성도를 떠나서 유오성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란 단어로도 모자란다. 유오성의 대척점에 선 민석역의 장혁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진다. 장혁의 연기스타일을 감안하면 스크린보단 브라운관이 여전히 더 적합하다. 몰입감이 우선시되는 스크린과 달리 단발성 흐름에 집중하는 브라운관 속 드라마 타입이 장혁에겐 더 어울릴 듯하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영화보단 TV에 더 집중되고 힘을 준 느낌이 이유가 있다.
 
영화 '강릉'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릉’, 낭만과 야만 그리고 위선의 시대를 얘기하기엔 너무 얕고 낡은 시대의 퇴물을 끌어왔다. 개봉은 오는 1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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