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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이상하게 묘하게 끌리는 ‘장르만 로맨스’
이상한 상황과 사건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 사건의 ‘맞물림’
‘옴니버스’ 스타일 스토리, 신인 조은지 감독 연출력 ‘주목’
2021-11-09 00:00:02 2021-11-09 00:00: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상한 얘기다. 정말 이상하기만 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이상함이 이상한 걸로만 마침표를 찍지 않는단 거다. 이상한데 묘하게 끌린다. 그리고 이상한데 묘하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수긍된다. 이상한 건 또 있다. 그 이상한 얘기를 만들어 내는 인물들 모두 하나 같이 이상하기만 하다.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그렇다. 그럼 뭐가 어때야 정상인가라고. 다시 정리하면 이런 것 같다. 이상하다. 그런데 결코 이상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안에 사람들까지도.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상함이 묘하게 공감이 되는 얘기다. 전설적 인물의 명언 같은 제목 장르만 로맨스는 이상한 영화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만 등장한다. 그런데 이게 결코 이상하게 다가오지 않는 묘한 힘이 뿜어져 나온다.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이 만들어 낸 스트레인지(strange) 월드는 그래서 한 번은 꼭 발을 들여놔봐야 할 만한 세상이다.
 
 
 
잘 나가던 소설가 김현(류승룡). 정말 잘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나가고 싶어도 못나간다. 글이 나오지 않는다. 7년 째 제자리 걸음이다. 창작의 창고가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못하겠다. ‘나 정도는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고 자기 위안 중이다. 물론 실제론 심각한 상태다.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이미 이혼한 아내 미애(오나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댄다. 아들 성경(성유빈) 문제 때문이다. 학교 생활도 문제지만 사생활이 더 문제다. 여자친구에게 어느 날 이별을 통보 받았다. ‘그것’(?)도 안 했는데 여자친구는 임신을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성경은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이별을 아픔을 토로한다. 근데 이 모습이 짐짓 가슴 절절하고 아련함이 느껴지기 보단 괴상하고 웃음이 실실 터진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스틸. 사진/NEW
 
아들 문제로 미애의 집에 온 현은 서로의 연애사를 토로하며 언쟁을 벌이다 불꽃이 튄다. 전부인과 전남편의 불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을 우연히(?) 아들 성경이 본다. 난 이별했고, 엄마 아빠도 이별했다. 그런데 바람이다. 성경은 속이 터진다. 정말 삐뚤어질 것이다. 성경은 본격적으로 엇나가려고 발악이다. 그런데도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웃음이 실실 터진다.
 
현은 이혼한 전 아내와 아들의 이런 들볶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속앓이다. 그렇다고 지금이 편한 건 아니다. 재혼한 아내와 그 사이에 낳은 딸은 함께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렇다. 기러기 아빠다. 놀라운 건 현의 전 아내와 현 아내가 서로 아는 사이다. 현을 두고 자신이 전 아내 그리고 현 아내란 점 모두를 안다. 이 집안 정말 대책 없어 보인다. 이러니 7년 째 글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해 보일 정도.
 
영화 '장르만 로맨스' 스틸. 사진/NEW
 
현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더 가관이다. 친구 순모(김희원)는 현의 출판사 대표이자 친구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의 전 아내 미애의 현재 남자친구다. 현은 모르는 사이다. 두 사람은 아들 성경 그리고 현 몰래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온다. 현과 성경은 상상을 넘어선 감정에 휘둘린다. 우선 실연의 아픔에 고개를 떨구던 성경은 동네 아줌마 정원(이유영)과의 귀여운 일탈에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시절의 짝사랑을 그려나간다. 현은 더욱 상상 이상이다. 과거 친했던 문학계 후배 작가(오정세)를 통해 알게 된 청년 유진(무진성). 알고 보니 현이 강의를 하는 대학의 학생이고, 현이 강의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유진은 난데 없이 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습작 하나를 건 낸다. 기겁스러운 고백과 뜬금없는 습작. 하지만 그 습작 묘하게 힘이 있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스틸. 사진/NEW
 
현은 조만간 신작을 내지 못하면 엄청난 금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 순간 유진이 들어왔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고백해 오는 이 남학생의 돌격 앞으로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 남학생의 글 감각은 너무 뛰어나다. 현은 이 남학생과 전략적 동거를 결심한다.
 
현의 동거, 그의 전 아내 미애의 연애사, 두 사람의 아들 성경의 짝사랑 판타지. 여기에 현과 미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순애보를 간직한 순모. 동네 어린 학생과 기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원. 이렇게 꼬이고 저렇게 꼬이고 그러다 한 번 더 꼬이고. ‘얽히고설킨이란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관계로 치닫게 된다. 도대체 이 얘기를 어떻게 마무리 할까.
 
영화 '장르만 로맨스' 스틸. 사진/NEW
 
배우 조은지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가제 입술은 안돼요로 출발한 이 영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맛이다. 그리고 도저히 매칭 안 되는 각각의 얘기 덩어리가 툭툭 던져진 상태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맛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황적 묘사의 맛과 그 상황적 묘사의 동력이 되는 대사()의 맛은 온전한 영화적 MSG.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영화적 MSG.
 
장르만 로맨스는 기묘할 정도다. 각각의 덩어리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기묘할 정도란 수식어는 부정적 의미보단 긍정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렇게 따로 노는 힘이 강하면서도 강력하게 교집합을 형성한 것은 신인 조은지 감독의 조율 능력이다. 얘기 자체가 갖는 관계의 힘이 드러내 놓고 얘기를 한다고 강조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힘을 내는 건 특출한 방식이면서도 꽤 유려한 연출력이라고 밖엔 설명하기 힘들다.
 
각각의 얘기 안에서 인물들은 관계를 얘기한다. 그 관계의 얘기는 각각의 방식대로 풀어가고 매듭을 짓는다. 하지만 인물들만의 얘기만 그렇게 풀어가는 게 아니다. 인물들이 만들어 낸 얘기의 덩어리들도 그렇게 풀어가 버린다. 그 모든 게 완벽한 인과관계로 흐름을 주도하면서 전체의 맥락을 잡아간다. 옴니버스에 가까운 형식을 하나의 극영화로 온전히 이끌어 가는 감독의 솜씨는 장편 데뷔란 신인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스틸. 사진/NEW
 
장르만 로맨스가 상업이란 테두리 안에서 해석돼야 한다면 공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영화 자체가 공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럴 수 있겠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로 흘러가야 한다. 워낙 영화적 설정과 임팩트에만 방점을 찍은 상황과 관계의 묘사뿐이다. 흥미와 재미 그럴 수 있겠다로만 바라보면 피식거리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바라본 그럴 수도 있다로 쳐다보면 웃음의 농도가 시간의 흐름과 반비례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이 얘기를 끼워 맞춘 감독 조은지의 힘이다. 오랜만에 충무로에 등장한 감독의 영화다. 그가 배우란 셀럽으로 불리기 때문에 플러스가 된 지점이 아니다. ‘장르만 로맨스는 충분히 감독 조은지의 다음을 꼭 봐야만 하는 이유를 전해 준 온전한 결과물이다 개봉은 오는 1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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