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아마도 ‘친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애증이 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절대 아니다. ‘친구’ 이후 그에겐 비슷한 그리고 강렬한 이미지를 소유한 캐릭터들만 제안이 들어온 것 같다. 한때는 그의 거친(?) 성격에 대한 출처 불명의 루머까지 있었다. 물론 그를 제대로 아는 분들이라면 그게 단순한 루머일 뿐이고, 설사 그 루머가 사실이었다고 해도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때는 충무로에서 웬만한 작품의 주연급 캐스팅은 그를 무조건 거쳐간 시절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캐스팅 라인업 0순위와 1순위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를 점차 뒤로 밀어냈다. 그랬다고 그가 딱히 섭섭함을 드러내거나 서운함을 담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는 단 한 장면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도 주연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뽐내며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영화 ‘강릉’의 감독도 그에게 출연 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강릉’ 같은 영화에 유오성의 존재감을 빼놓는다면 장르의 맛을 살릴 방도가 있을까 싶다.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이야기의 맥이 이어지고, 그의 눈빛 만으로도 이야기에 힘이 느껴진다. 유오성이란 장르가 만들어 낸 ‘강릉’과 ‘강릉’이 필요로 했던 유오성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배우 유오성.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대기 중인 영화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최근 ‘위드 코로나’ 전환을 맞이하면서 극장의 영업제한 폐지가 결정된 뒤 개봉을 미뤄온 작품들이 속속들이 공개가 되고 있다. ‘강릉’ 역시 그 작품 라인업 중 한 편이었다. 유오성과 ‘강릉’이 만난 것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유오성은 기억을 조금씩 더듬었지만 꽤 즐거웠던 기억이기에 어렵지 않게 생각의 서랍 속에서 잠자던 기억을 찾아 꺼냈다.
“정확하게 날짜는 2017년 3월 23일로 기억해요. 윤영빈 감독과는 다른 영화 시사회장에서 처음 만났었어요. 그리고 그 전에 다른 경로로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뒤였죠. 그리고 ‘만납시다’란 전화 한 통에 나가서 보게 된 게 여기까지 온 거에요(웃음). 투박한 정서랄까. 강원도 특유의 느낌이 많이 들어가 좋았죠. 개인적으로 이 장르를 선호하는 것도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했고요.”
유오성은 갑자기 쑥스러운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배우 생활 동안 역할을 먼저 역으로 제안한 작품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하단다. 그는 극중에서 강릉지역 폭력조직 리더 ‘길석’역을 맡았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윤 감독이 유오성에게 제안한 배역은 ‘길석’이 아니었다. 유오성은 시나리오를 받아 읽은 뒤 자신이 하고 싶던 배역을 역으로 제안했다고.
배우 유오성.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가 무슨 배역을 고르고 할 위치도 아니지만. 오해 없으시길 바라면서 말씀 드리면, 사실 제가 제안 받은 배역은 영화 속 김준배씨가 연기한 큰 형님 ‘무상’역이었어요. 제가 감독님을 설득한 게, 제가 무상을 연기한다고 해도 다른 배역들 대사가 20~30대 말이 아니었어요. 이걸 과연 관객들이? 이런 느낌이 들었죠. 그렇게 설정하고 보니 ‘길석’이 제가 할 수 있는 배역 같았어요. 뻔뻔하게 ‘이거 잘 할 수 있다’라고 배우 인생 처음으로 감독님께 졸랐죠.”
느와르 장르 특성상 선과 악이 존재해야 한다. 그를 전설로 이끈 ‘친구’에선 ‘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작품에서 선이 굵은 역을 도 맡아 오면서 ‘선’을 대표하는 배역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함께 등장한 장혁과는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함께 하며 만났던 경험이 있는 유오성이다. 당시에는 유오성이 악역 그리고 장혁이 선역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유오성이 선역 그리고 장혁이 악역이다.
“배우에게 선역이나 악역은 사실 큰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그저 누구라도 배우라면 주어진 배역에 집중하고 그걸 잘 해내고 싶은 욕심만 있는 거죠. 글쎄요. 이번에 혁이가 악역이라고 다들 말씀하시는 데 제 관점에선 악역이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주변 인물 그리고 상황과 대치가 되는 쪽에 있는 것뿐이니. 제가 연기한 ‘길석’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악역이지만 혁이가 연기한 ‘민석’은 그 나름대로 어떤 연민도 있고. 주의 깊게 볼만한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배우 유오성.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50대가 훌쩍 넘은 나이에 유오성은 ‘강릉’에서 비교적 격한 액션을 대부분 직접 소화해 냈다. 이젠 그 나이 대 정도면 이 정도의 액션은 대역을 쓰거나 감독과의 상의를 통해 수위 조절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철두철미하게 체력 관리를 해온 탓에 이번에도 대부분의 액션을 잘 소화해 냈다. 그는 자신의 적으로 출연한 장혁의 액션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예전에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에 출연하면서 정말 엄청나게 운동을 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몸 만들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지금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4일 정도는 꾸준히 하고 있으니 체력적인 문제는 사실 크게 없었어요. 다만 혁이가 액션을 찍는 장면을 보고 웃음이 나더라고요. 혁이가 엄청난 운동광이잖아요. 그런데 좀 힘들어 하더라고요.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싶었죠. 하하하.”
유오성은 인터뷰 동안 ‘강릉’이 큰 성공을 거둔다면 모든 찬사는 제작진과 탄탄했던 시나리오 덕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배우는 두고 ‘창조자’(크리에이터)가 아닌 ‘행위자’(퍼포머)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고 영화적 공간을 위해 다양한 스킬을 더하는 스태프들을 ‘창조자’라고 말했다. 배우는 그저 그 공간에서 역할을 분석하고 행동하는 인물들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배우 유오성.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배우는 정말 간결하게 설명하면 연기만 하는 사람이잖아요. 나머지는 전부 전문가들의 몫이죠. 전 맨몸으로 현장에만 가면 미술 의상 헤어 등을 전부 만들어 주세요. 그냥 숟가락만 하나 더하는 것뿐이에요. 창조를 하는 크리에이터분들이 모든 걸 만들어 주시면 그 안에서 행위만 하면 되요. 이번 작품에서도 크리에이터 분들의 결과물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공부했습니다.”
‘강릉’은 ‘비트’와 ‘친구’에 이어 유오성의 느와르 3부작의 완결편으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고 있다. 그는 앞선 두 작품 모두 엄청난 작품이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그 작품의 명성이 결코 자신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 작품 모두 어설펐던 어린 시절의 유오성이 작품의 영광이 기댄 것 뿐이라고.
배우 유오성.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비트’ 찍을 때 정말 정신 없이 찍었어요. 지금도 배워가는 중인데 그때는 얼마나 어설펐겠어요.느와르의 기본은 삶에 대한 페이소스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세상에 대한 시선과 삶에 대한 염세적인 부분, 거기에 연민과 회한 등이 담겨야겠죠. 나이를 먹어서 이 장르를 대하니 이제야 아주 조금은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다른 작품으로 ‘유오성’이 또 이런 모습도 있단 걸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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