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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강릉’ 장혁 “이런 장르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민석’ 모두가 악역이라고 하지만 내 눈엔 연민의 감정 보였다”
“‘강릉’의 거친 바다 모습, 너무 쓸쓸했다. 이 영화 정서와 닮아”
2021-11-13 00:00:02 2021-11-13 00:00: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벌써 데뷔 24년 차다. 그 시절 X세대를 대표한 신세대 스타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불혹의 중반을 넘어선 중년의 스타다. 그럼에도 그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 감성이 되 살아 난다. 그 역시 그래서 그랬을지 모른다.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에 열광했던 시간이 바로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이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등장하면서 한국형 느와르가 꽃을 피우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에는 그도 스타였다. ‘친구와 같은 영화에 꼭 한 번 출연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년이 흐른 뒤 친구의 주인공 유오성이 출연하는 작품으로부터 출연 섭외가 들어왔다. 무엇보다 남자 배우라면 한 번쯤 꿈꿔 볼 악역이다. 그는 데뷔 이후 사실 악역을 소화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대역이 대선배이자 로망처럼 생각했던 느와르의 유오성이다. 장혁은 그래서 강릉의 무자비한 건달 민석이 더 애틋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가 민석과 만나 함께 지냈던 강원도 강릉에서의 시간을 전해 들었다.
 
배우 장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강릉과 장혁의 만남은 무려 4년 전이다. 그만큼 오래된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미뤄지고 또 미뤄지다 이뤄졌다. 이미 장혁은 영화 검객으로 코로나 시대극장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극심한 코로나로 인해 무대 인사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위드 코로나전환과 함께 극장가 개봉하는 첫 작품이 강릉이다. ‘이것만도 너무 감사하다며 첫 인사를 했다.
 
극장에 띄어앉기가 돼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차갑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너무 감사하죠. 이런 시기에 극장에 개봉할 수 있게 됐단 게. 출연 제안은 사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날 정도에요. 느와르란 장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움이 더 컸어요. 제 눈엔 민석이 악역이라기 보단 길석’(유오성)을 방해하는 빌런의 느낌이 강했죠. 더욱이 연민까지 느껴졌어요.”
 
그가 연민을 느낀 민석은 서울에서 강릉으로 온 폭력조직 보스다. 그는 목표한 것을 이루고 또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두철미하면서도 무자비하게 잔인한 면모를 드러낸다. 날카롭다 못해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무조건 앞으로 직진만 하는 성격이다. 이런 인물에게 장혁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연민을 느끼고 또 머물지 못하는 이 남자의 속내를 바라봤다.
 
배우 장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기본적으로 느와르 장르에서 보여주고 싶은 남성다움 보단 강릉에서의 민석은 연민이 더 많은 느낌이었어요. 민석이 무자비하고 또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이는 데 그게 다 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요. 생존이 먼저였을 뿐이죠. 삶에 대한 발버둥이라고 할까요. 첫 장면에서 배의 창고 안에 갇혀 있던 모습 그대로 현실에서도 살아가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죠. 불쌍해 보였어요.”
 
강릉은 기본적인 한국형 느와르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여성을 소재로 사용하지 않는단 점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건달 세계의 의리를 멋으로 그려내지 않았단 점이다. 세 번째는 그 세계를 순수한 날 것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했단 점이다. 이런 점 외에도 주연 배우였던 장혁의 시선에서 강릉이 차별성을 가질 수 있던 점은 또 있었을 듯싶다. 그의 눈에 비친 강릉은 이랬다.
 
이야기 자체의 밀도감이 굉장히 높지 않나 싶어요. 그 밀도감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게 캐릭터 각자가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이 담겨 있었어요. 민석과 길석은 물론, 다른 모든 캐릭터들이 다 그랬어요. 그 배역을 맡은 배우가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 해석을 감독님이 받아 들이고 적용시키기에 따라서 너무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느와르 장르이지만 그래서 액션보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깊이와 변화를 더 집중적으로 바라본 작품이지 않나 싶어요.”
 
배우 장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가 로망처럼 여기고 꿈꾸던 유오성과는 사실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2015’에서 함께 한 바 있다. 드라마에서 처음 만난 뒤 6년 뒤 다시 스크린에서 조우했다. 당시에는 유오성이 악역이었고 장혁이 선역이었다. 이번 강릉에선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꾼 것이다. 장혁이 강릉출연을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오성 때문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장르에선 선배님을 따라갈 배우가 있을까 싶어요. 선배님의 묵직하고 그런 모습이 베이스가 돼 그 위에 제가 가진 이미지를 덧칠하니 꽤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았어요. 제가 연기한 민석은 계속 찔러야 하는 캐릭터이고, 그래서 형님의 묵직함과 시너지가 잘 이뤄질 것 같았죠. 근데 사실 선배님과 함께 한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딱 두 시퀀스 정도에요(웃음). 포장마차 장면하고 마지막 액션 장면 정도죠. 하하하. 선배님 아우라가 그만큼 크게 느껴지실 거에요.”
 
영화 강릉에서 가장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는 특유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강릉 앞바다 전경이다. 영화적으로 민석과 길석의 대결과 감정의 충돌을 비유하는 미장센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장면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오대환이 MBC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아주 잠시 공개를 한 바 있다. 장혁의 기억에 강릉의 바다는 이런 느낌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배우 장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 영화처럼 굉장히 쓸쓸한 느낌으로 남아 있어요. 그런 느낌은 대한민국 어떤 바다를 가봐도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정말 지금 생각하고 떠올려봐도 되게 묘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감독님도 강릉을 무대로 그리셨다 싶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민석과 길석이 강릉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강릉의 모든 감정을 대표하는 장면이지 않나 싶어요.”
 
벌써 장혁은 데뷔 24년이 됐다. 그 시절도 그랬지만 지금도 장혁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청춘스타이자 X세대 표상이다. 그는 크게 웃으며 손사래다.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섰고 세 아이의 아빠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역시도 가끔씩은 그 시절을 기억해 보곤 하는 듯하다. 얼마 전 자신의 출세작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화산고를 다시 봤었다고 한다.
 
배우 장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화산고찍었을 때가 24세였어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현장에 앉는 의자에 열정 장혁이라고 썼던 게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니 너무 창피한데(웃음). 단순하게 열정만 갖고 채워 나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나 봐요. 근데 이 나이 되니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밀도에서 나오는 걸 알게 됐죠. 이젠 좀 같은 대사를 해도 더 진짜처럼 느낄 수 있는 배우가 된 것 같아요. 아직 더 배워야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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