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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연상호 감독 “인간 원초적 감정, ‘지옥’ 통해 그리려 했다”
“‘지옥’ 본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지옥’이란 단어 어떻게 탄생했나”
“B급 영화 정서 좋아해…‘지옥’ 서브 컬쳐 문화 형태 시각화 되길 원해”
2021-12-01 00:00:03 2021-12-01 00:00:0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개인적으로 아직도 그에게 두 가지 선입견이 있다. 그를 탁월한 실사 연출자(영화 감독)라 부르는 것에 여전히 의문형을 남긴다. 그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애니메이션 전문 창작자였다. 우리에겐 돼지의 왕이란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가장 큰 선입견 한 가지, ‘애니메이션 연출자의 실사 연출은 실패한다란 거대한 벽을 무너트렸다. 실사 연출 데뷔작 부산행으로 단 번에 1000만 관객을 찍었다. 하지만 한 번은 먹혔어도 두 번은 안 통하는 듯했다. 2년 뒤 선보인 염력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후 반도까지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름은 거품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난은 비난일 뿐. 드라마 방법을 히트시키며 방법 유니버스란 세계관을 구축했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코드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착각했는지 모른다. 아니 대중이 그를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전무후무한 세계관 창조자에 가깝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하나 같이 세기말 디스토피아를 그려왔다. 우린 그 안에서 얘기의 얼개를 찾으려고만 노력했다. 그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중이다. 이 과정의 첫 번째 포인트가 이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은 연상호 감독이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지난 달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지옥시즌1 1화부터 6화까지 공개됐다. 공개 이후 지옥오징어 게임에 이어 '넷플릭스 오늘 전세계 톱10 TV프로그램() 부문’ 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K-콘텐츠 위력을 증명했다. ‘오징어 게임신드롬이 완벽하게 지옥으로 옮겨왔다. 국내에서도 지옥 신드롬은 여전하다. 하지만 워낙 색깔이 뚜렷한 작품이기에 호불호는 분명히 나뉘고 있다. 그럼에도 인기는 인기다.
 
처음부터 넷플릭스 측과 구상을 할 때 보편적인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어요. 이런 장르를 좋아하시거나 굉장히 마니아적으로 관람하실 분들만 좋아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 여겼죠. 세계관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이 세계에 빠져 드는 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로 관심을 가져 주실지는 정말 몰랐어요. 사실 좀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지옥은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에 가깝다. 이 정도로 직설적이고 파격적인 제목이 한국 콘텐츠 시장을 넘어 전 세계 콘텐츠 역사에서 존재했었는지 의문일 정도다. 출연 배우들도 캐스팅 단계에서 제목에 매료돼 출연 결정 여부를 떠나 시나리오부터 들춰봤다고 한다. ‘단어가 주는 압박감 그리고 신비감.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압도적 무게감이 어떤 식으로든 이 작품의 신드롬을 이끌어 가고 있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정말 단순하게 정의를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보다 더 끔찍한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지 않을까 싶었죠. 웹툰 ‘지옥 함께 집필한 최규석 작가와 처음 제목에 대해 상의하다가 이런 얘기를 했고 결국 그럼 지옥으로 하자고 했던 거죠. 근데 오히려 제목을 짓고 나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죠. ‘지옥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은 뭘 보고 이 실체 없는 것에 지옥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그런 궁금증이 지옥자체 모티브이자 동력이 됐죠.”
 
극 자체의 동력은 미스터리한 현상, 고지에 있다. 하지만 그 현상을 파고들면서 얘기를 끌고 가고 싶진 않았다. 그 현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군상 부조리함에 초점을 뒀다. 그런 쪽으로 연 감독은 시선을 돌렸고, 그의 시선에는 인간들의 여러 고민거리인 감정적으로 수 많은 굴곡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굴곡은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 현실과 무조건 닮아 있어야 했다.
 
“'지옥'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 공포와 맞닥트린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일종의 호러 장르 안에서 움직인다고 봐야죠. 거대한 미지의 존재와 인간을 대비시켜 나약함 또는 강함을 표현해야 했어요. 그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던 게 종교’였.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이런 모든 걸 극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판단했죠. 하지만 종교적 색채보단 호러 장르 안에서 풀어가려 노력했어요.”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지옥의 사자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죽음에 대한 고지’. 끔찍한 죽음 등. 이런 현상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사람들은 혼란과 혼돈에 빠진다. 지옥이란 죽음 뒤 세계라 여겼지만 연 감독의 지옥을 보면 지옥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쩌면 진짜 지옥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지옥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의 행동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힘, 그 힘의 요소는 무엇일까. 환경도 있을 것이고, 이데올로기도 있겠고. ‘지옥에서 제가 보여 주고 싶던 건 어려움과 마주해도 인간에겐 누군가는 살아 나갔으면 좋겠단 마음이 분명히 있단 것. 이 마음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길들여지고 무너진다 해도 반드시 존재하는 본능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그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초기 애니메이션 연출부터 가장 최근 반도까지 언제나 세기말 디스토피아를 그려왔다. 그의 영화적 세계관은 뚜렷했다. 코미디적 성향이 강했던 염력조차 현실 붕괴를 그려가면서 당면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투영시켰다. 하지만 이런 작품 색깔이 그를 대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언제나 무너진 세계관 속에서 희망을 얘기했다. 그 코드가 지옥에서도 제시된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아이의 등장으로 희망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많이 보는데, 크게 부인은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아빠가 되고 나선 아이들만 봐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이란 존재는 아주 작은 사랑을 줘도 크게 만족하잖아요.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희망을 갖지 못한다면 전 그 사회야말로지옥이라 생각해요. 아이에게 희망이 안 느껴지는 사회라면 더 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는 사회라 생각해서 그런 것들이 제 작품들에 반영된 것 같아요.”
 
연 감독은 지옥의 유일한 옥의 티로 국내 언론과 팬들이 지적한 CG퀄리티에 대해서도 확실한 생각을 갖고 답했다. 단순하게 제작비 차원이거나 완성도 측면은 아니었다. 대부분 지옥지옥의 사자들에 대한 CG퀄리티에 대해 의아함을 넘어 궁금증을 나타내는 질문들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연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의문을 갖게 되신 건지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제 의도가 잘 반영된 결과물이라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가 워낙 B급 영화를 좋아해요. ‘지옥이 제가 좋아했던 B급 서브 컬쳐 문화들을 풍기는 형태의 시각화로 구현되길 바랐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메이저 감정이 아니라서(웃음). 전 지금 그대로의 지옥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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