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박진석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공장 폭발 사고와 관련해 손재일 대표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지만, 각자대표 중 한 명인 김동관 부회장은 제외됐습니다. 경찰과 노동당국은 각자대표인 두 사람의 업무 영역이 달라 서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총수 일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전문경영인이 어디 있느냐며 사실상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총수 일가가 각자대표라는 방패 뒤에 숨어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입니다.
지난 1일 폭발 사고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모습. (사진=뉴시스)
대전경찰청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등은 지난 8일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사고가 난 대전사업장의 안전관리책임자인 가재웅 대전사업장에겐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경찰은 입건된 2명 외에 참고인 1명 등 총 3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도 내렸습니다.
김동관 부회장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표지만 입건 대상에선 쏙 빠졌습니다. 김 부회장은 손 대표와 함께 이 회사의 각자대표 2명 중 1명(전략부문)입니다. 노동청은 김 부회장과 손 대표가 각자대표고, 국내 공장 관리를 담당하는 손 대표에게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그를 입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국내 공장 관리는 손 대표가 담당하고, 김 부회장은 전략부문 대표이사로서 수출 등 해외를 담당하고 있다. 서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법조계에선 사고가 벌어진 사업과 사업장을 실제로 누가 운영하는지 구조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나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표이사 등 책임 있는 인물이 안전·보건 의무를 다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각자대표라는 것만 보고 김 부회장을 입건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건 옳지 않다"라며 "손 대표가 진짜로 김 부회장의 지시 없이 안전·보건 업무에 대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구조였는지부터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소재 한화 서울 본사 모습. (사진=뉴시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해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또 제2조(정의)에선 '사업주'에 관해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로, '경영책임자 등'에 관해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신 변호사는 "명목상은 도급업체지만, 실제로 원청이 주도적으로 운영했다면 원청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형식이나 명목으로 집행되는 법이 아니라 실질에 따라서 작동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대상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표면상의 직책으로만 보지 않고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 하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설명입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8월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부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중 장남으로, 현재 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 △㈜한화 전략부문 대표이사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한화임팩트 대표이사 등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유력한 그룹 후계자로서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룹 내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시스템 구축이나 최고 의사결정 단계에서 김 부회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2024년 6월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공장 참사가 대표적 선례입니다. 당시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을 최고안전책임(CSO)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자신은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일상적 업무는 박 본부장이 하도록 하면서 박 대표가 주요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경우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내린 점 등을 고려하면 사업총괄책임자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대표에게 참사의 책임을 물어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에서 박 대표의 형량은 4년으로 줄었지만, 그가 참사에 책임이 있고 처벌 대상이라는 판단은 유지됐습니다.
이에 천경득 변호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한 한화그룹의 모든 최종 결정은 총수 일가가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우리 사회의 상식"라며 "총수들은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건데, 그렇게 해선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슨 실효성이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천 변호사는 한화솔루션 소액주주 대표로서, 한화그룹의 거버넌스 문제를 지속해 제기해 온 인물입니다. 그는 "법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사고의 실질적 책임자인 기업 총수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전문경영인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찾아서 앉혀놓을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건 총수 일가밖에 없지 않느냐"라고도 했습니다.
한편, 경찰과 노동당국 등은 차후 수사 상황에 따라 김 부회장도 입건해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김 부회장을 포함해 혐의가 있거나,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연히 수사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박진석 기자 ptba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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