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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성폭행은 살인보다 더한 끔찍한 범죄"
양형위 토론회 '장애인 아동 성범죄 양형기준' 공방
2011-11-29 19:51:26 2011-11-29 19:52:54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낮은 양형기준과 피해자와의 '합의' 사실이 양형요소에 반영되는게 옳은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2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주관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아동·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관한 공개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소설가 공지영씨는 "성범죄에 관해 법원이 왜 낮은 형량을 내리는지 의문"이라며 "성폭행은 살인보다 더한 끔찍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소설 '도가니'의 원작자인 공씨는 대학교 2학년 시절 귀가하다 50대 남성에게 무작정 끌려갔던 이야기를 꺼내며 "당시 나는 성년이었는데도 그 남성에게 반항하기 힘들었다. 청소년이라면,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라면 더한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양형기준을 장애우들에게 똑같이 적용한다면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씨는 "나는 그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히 가벼운 성추행도 당하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심각한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면 끔찍한 그 기억이 쉽게 지워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박영식(20기) 변호사는 "나는 영화 '도가니'를 보지도, 소설 '도가니'를 읽지도 않았다. 다만 지난 20년 동안 재판 업무를 담당해오면서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끔찍하다'는걸 느꼈다"라고 운을 뗐다.

박 변호사는 이어 "범죄 유형이나 가해자의 나이 등 사건 별로 사실관계가 각각 다르다. 양형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사건마다 통일된 양형기준을 적용하는게 사실상 어려운데도 특정 사건이 불거졌을 때 마치 그게 대표적인 양형 요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풀려지고 매도되는 사회구조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조두순, 김수철, 김길태 사건 등 연이은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에 힘입어 국회를 통과한 '화학적 거세'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정치권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까지 동원한다고 하지만, 결국 이런 처벌을 받는 가해자가 몇명이나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법과 양형제도를 고치기 이전에 '가해자가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이어 "성범죄 관련 재판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재판'"이라며 "'고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가해자 측은 끊임 없이 피해자의 사생활을 문제 삼으며 2차 피해를 불러일으킨다"고 꼬집었다.

이에 공씨는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느끼기에 '내가 살인을 저지른 것 만큼의 나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을 할 정도로 막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 측 토론자로 나선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범죄 사건에서 '진정한 합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합의' 사실이 양형요소에 반영되는게 옳은가. 논리적으로 진정한 합의는 없다"며 "성폭행 피해는 원상회복이 힘들다. 합의는 대부분 강제적으로 받은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씨 역시 "'도가니'를 집필하려고 여러 성범죄 사건을 접했다. 피해 아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찢어질 때도 많았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합의' 제도 자체가 잔인하다"며 "피해자와의 '합의'가 사건처리 과정의 완화 요소라는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법원은 성범죄 사건에서의 '합의'를 단순하게 해석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와의 합의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피해자가 진정으로 선처를 원하는지 등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박상훈 변호사(법무법인 화우)가 진행한 이날 공개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소설가 공지영씨, 박영식 변호사,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화 도가니가 국민들의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원인에 대한 의견',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법원 양형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등과 관련해 열띤 공방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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