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기소된 증권사 재판의 선고기일을 앞두고 검찰이 제시한 회심의 '반격 카드'가 통하지 않았다.
검찰이 '스캘퍼(초단타매매자)의 거래가 일반투자자의 손실에 영향을 준다'며 제출한 분석자료가 이번 재판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주문처리상) 시간우선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다.
앞서 증권업계 ELW 시장의 '스캘퍼 특혜' 논란을 자체적으로 인지, 내사에 착수했던 검찰은 지난해 6월 12개 증권사를 'ELW 부당거래' 혐의로 한꺼번에 기소하면서 이들의 유죄를 확신하는 듯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막상 ELW 관련 재판이 시작되고난 이후 10개 증권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자 분위기는 역전됐다.
학계와 증권업계에서는 "검사들이 경제·증권가 현실을 잘 모른다. 행정적 규제를 하면 될텐데 무리하게 형사처벌 영역으로 끌고 왔다"고 비판을 제기했다.
◇재판부 "검찰 분석자료, 공소사실 입증 근거 아냐"
당초 신한금융투자증권과 KTB투자증권에 대한 선고기일로 예정됐던 지난 13일 검찰은 '스캘퍼의 주문으로 인한 일반투자자 거래의 기회상실 가능성이 0.008%'라고 판시한 대신증권 재판부(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의 판결 근거를 반박하며 '증권사별 2년6개월간 ELW 거래내역' 패턴 분석결과를 제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여백(여의도 백화점)팀'이 ELW 종목 가운데 2년6개월간 거래했던 한 종목의 하루 분량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스캘퍼의 주문이 나간 이후 1초 주문 사이에 LP(유동성공급자)의 호가가 변경되는 경우가 80%, 2초 사이엔 100%"라는 것이다.
즉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대신증권을 이용하는 일반투자자가 ELW 거래를 하는 데 있어서 이 사건 스캘퍼들로 인해 거래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는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고 판시했던 대신증권 재판부의 판결 근거와 다른 내용이다.
앞서 27부는 대신증권에 무죄를 선고하며 '스캘퍼가 빠른 속도를 이용해 LP호가 직전 물량을 선점함으로써 일반투자자의 매매기회가 상실되는 구간은 0.008~0.016초 정도의 구간'이며 '이 중에서 일반투자자 주문의 기회상실 가능성이 제기된 부분은 0.008%'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일 우리투자증권 등 3개 증권사에 무죄를 선고한 22부(김우진 부장판사) 역시 대신증권·한맥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에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김우진 재판장은 "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는 스캘퍼 주문과 근접한 LP 주문을 통계적으로 접근한 것일 뿐"이라며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스캘퍼의 거래가 일반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LW 시장, 검찰과 법원의 다른 시각
검찰은 스캘퍼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12개 증권사의 재판과정에서 '신의성실의 의무', '(주문처리상) 속도 우선의 원칙'을 줄곧 강조해왔다.
금융거래에서 특정 고객만의 주문이 상대적으로 빨리 처리되면 일반투자자 고객들은 최소한 그런 사실을 알권리가 있는데 증권사가 이를 알리지 않았기에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DMA(증권 자동전달시스템, 직접 전용주문)시스템은 세계적 추세이며 이미 국내 증권가에 알려져 있었다. 스캘퍼들이 증권사를 찾아다니며 거래를 성사시켜왔던 사실에 비춰보면 증권사에서 일반투자자들 몰래 스캘퍼에게 전용시스템을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법원은 증권사가 스캘퍼들에게 제공하는 '미가공 원데이터'는 알고리즘 매매 방식의 특수성으로 인해 도입된 것일 뿐 '스캘퍼의 매매기법 자체' 또는 '주문처리 속도'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속도의 면에서 가공·편집된 시세정보를 제공받는 경우와 차이가 0.001초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며, 원데이터를 그대로 일반투자자에게 전달하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서 변환해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초자산 가격을 보고 LP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스캘퍼에게 시험을 볼때 힌트까지 독점적으로 주는 것과 같다'는 검찰의 주장은 미가공 원데이터 제공이 이뤄지게 된 경위에 대한 사실관계에 부합히지 않는 무리한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법원은 ELW 시장에서 일반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이유는 'ELW 시장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스캘퍼 탓이 아니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일반투자자들이 손실을 입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시간가치의 손실', 'LP 호가 스프레드로 인한 손실', 'ELW 거래 수수료 비용'을 거론하며 일반투자자들의 투기적인 매매형태도 가미돼 손실을 증폭한다고 봤다.
◇ELW '무리한 기소' 논란..항소심은?
증권시장의 혼란을 초래할줄 알면서도 '특혜제공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12개 증권사를 한꺼번에 기소한 검찰에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ELW 관련 재판이 시작된 이후 '증권 전문가'로 변신한 변호사의 논리에 적절한 반박의견을 내지 못한 검찰에게는 '증권사 현실을 모르는 금조부 검사'라는 딱지마저 붙었다.
또한 증권사는 "오랜 수사와 무리한 기소, 재판기간 탓에 증권시장의 성장동력이 위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 내내 변호인은 "수사와 재판에 임하느라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꼬집었으며, 실제로 증권사 사장들은 기소되기 이전부터 1년여간 사업확장이나 해외 출장 계획을 마음 편히 진행하지 못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형사처벌의 영역과 정책적·행정적 규제 영역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다며 '무리한 공소제기'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증권사의 주문접수 시점 또는 개개 주문의 선후를 정확히 판별하거나 주문 속도를 일치시킬 방법조차 없는 현재의 상태에서 이 사건과 같은 행위를 형사처벌하고자 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영역을 너무 확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ELW 불공정 거래' 논란은 금융감독 당국이 ELW 시장의 공정성과 대외 경쟁력, 전자통신 기술의 발전 상황 등에 대한 검토를 거친 다음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할 일인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오는 31일로 예정된 이트레이드증권과 현대증권(25부)에 대한 선고공판을 끝으로 'ELW 부당거래' 의혹에 연루된 증권사의 1심 재판이 모두 마무리된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항소심에서 '결정적 근거'를 재판부에 추가로 제시하지 않고는 앞서 내려진 법원의 판단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이 스캘퍼에게 DMA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특혜인가' 혹은 '맞춤형 서비스'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법원 인사이동이 이뤄진 2월 중순 이후에서야 열릴 항소심 재판에서 본격적으로 재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