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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지옥에서 온 몸으로 부르는 망부가
극단 몸꼴의 신체극 <오르페>
2012-09-23 17:33:48 2012-09-23 17:35:2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도 당신이 잡히지 않네."
 
22일 제16회 과천축제가 열리고 있는 과천시민회관 옆 자유마당. 폐허 같은 땅에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여러 개의 사다리들 사이로 일렉트로닉 기타연주와 거친 느낌의 보컬이 울려 퍼진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이 도입부는 공연 <오르페>의 야외극적인 특성을 살린 설정이자 줄거리 이해에 도움을 줄 실마리다.
 
신화 속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신체극 <오르페>는 사랑을 잃은 오르페우스가 극단 몸꼴 배우들의 몸을 빌어 부르는 망부가다. 음악으로 시작된,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기억과 경험은 배우들의 몸 외에 사다리, 물, 불 등 여러 오브제들을 거치면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 라이브로 펼쳐지는 것은 바로 지옥의 풍경이다. 신화 속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내려가지만 ‘앞만 바라보고, 뒤는 바라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면서 그만 아내를 잃고 만다. 야외극 <오르페>의 시작점은 여기서부터다. 오르페우스의 분신들인 배우들은 팔에 상주 표시 완장을 두른 채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고 엎드려 통곡하며 극을 연다. 오르페우스들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사다리를 차마 오르지 못하고 지옥의 밑바닥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이의 행적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지옥의 풍경은 생각보다 암울하지 않다. 야외 무대 곳곳에는 녹슨 반구를 무게추로 삼는 5개의 사다리가 놓여 있는데, 배우들은 시종일관 기우뚱 거리는 이 흉물스런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허공을 가르는 아름다운 몸짓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사다리와 배우들의 움직임이 어우러지면서 야외 무대는 때로는 연인들의 놀이터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도 록음악과 트로트 리듬을 오가며 사랑의 기억에 대한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피지컬 씨어터답게 배우와 관객 간 인터랙티브도 활발하게 이뤄져 극 중 내내 활기가 넘친다. 일례로 극 중반 배우들은 사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줄을 관객 손에 맡긴 채 곡예를 펼친다. 덕분에 관객들은 배우보다 더 긴장하고 극에 몰입하게 된다. 넘어질 듯 쓰러질 듯 위험천만해 보이는 몸짓을 하는 배우들에게 관객은 자연스레 손을 뻗어보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면서 깊은 심연의 여행에 빠져든다.
 
특히 극 말미에 요새처럼 보이는 사다리들이 일제히 불타면서 장관을 이룬다. 헬멧을 쓴 배우들은 이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온 몸에 물줄기를 맞기도 하면서 지상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를 오르지만 결국 사다리는 끊어지고 만다.
 
빌딩 높이의 사다리로부터 떨어지며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배우의 몸짓은 사랑하는 이를 못 잊어 지옥에 남음으로써 또 다시 금기를 깬 인간적인 모습인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잊지 못할 강렬한 관극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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