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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정지영 감독 "'정치의 계절', 작품으로 영향 미쳤으면"
작년 <부러진 화살> 이어 올해 <남영동 1985> 들고 부산 찾아
2012-10-06 16:38:13 2012-10-06 16:39:2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부러진 화살>에 이어 다시 한 번 부산발 흥행돌풍이 일어날까?
  
영화 <부러진 화살>로 부조리한 사법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정지영 감독이 신작 <남영동 1985>를 들고 돌아왔다.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쓴 동명의 자전수기를 토대로 극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고 김근태의 일대기나 공과를 다루는 대신, 김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의장이던 시절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2일간 당한 고문에 집중한다.
 
영화 속 고문 장면은 수십분 동안이나 계속되며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고문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키는가를 정공법으로 묘사한 셈이다.
 
소름끼칠만큼 정교한 고문장면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이 표현하되 윤사장(문성근 분), 박전무(명계남 분), 이두한(이경영 분), 강과장(김의성 분), 백계장(서동수 분), 김계장(이천희 분), 이계장(김중기 분) 등 남영동 대공분실 조직원들의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입장차를 통한 극적 리듬감 부여도 잊지 않았다. 
 
6일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 감독은 영화 밖에서도 예의 직설화법을 계속 이어나갔다. '대선후보를 이 영화개봉일에 반드시 다 초청할 것'이라는 정지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고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구체적 방법이 무엇인지는 개봉이후에나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지금 밝히면 관객이 그 장면을 보며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지영 감독 외에 배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서동수, 김중기 등이 동석했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이다.
 
- 부산에서 신작 발표하는 게 이번이 두번째인데?
 
▲ (정지영) "부산에 온 것은 시기가 적절히 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가 완성이 돼서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 전작에 이어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다. 힘든 점은 없나?
 
▲ (정지영) "오래 전부터 고문에 관한 이야기, 특히 가해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부러진 화살> 개봉시점에 김근태 님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고문 이야기는 김근태 님을 다루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실존인물을 다룬 건 우연이지 계획적인 건 아니었다."
 
-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던 과거. 지금에 와서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사법적 정의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 아니면 후대로서의 개인적 부채의식 때문인지?
 
▲ (정지영)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이나 이전 전작들이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런 얘기 같은데... 내 생각에는 영화감독이라면 당연히 선택하는 소재나 테마일 것 같다. 그동안 항상 아웃사이더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남영동 1985>도 같은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오래 전부터 고문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 극의 말미에 고문 당한 김종태(박원상 분)가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 분)을 용서하는 제스처가 나오는데. 연기할 때 실제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나?
 
▲ (박원상) <남영동 1985>에서 용서가 중요한 테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는지는 대답하기 참 어렵다. 고 김근태 님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영동 수기를 읽어보면 '용서가 인간의 몫인가',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마지막 신에 이경영 선배의 연기는 물론 연출의 디렉션에 의한 것이지만... 찍으면서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영화 중 백계장(이중기 분)은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약간은 지나친 설정이라는 느낌도 있다. 말단 직위의 사람이 과연 저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 (이중기) "모든 수사관들이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고문을 하지는 않는다. 백계장처럼 가치관으로 갈등하는 그런 인물이 실제로도 하나쯤 있었다고 들었다. 이 인물은 김종태를 오랫동안 함께 하며 그가 고문으로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다 보니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중들이 보기에 힘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마치 두 시간 동안 고문을 받는 느낌인데. 영화를 어렵고 세게 만든 이유는?
 
▲ (정지영) "이 작품을 하면서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부터 가장 크게 고민됐던 부분은 내가 묘사하는 고문이 과연 실제 경험처럼 그렇게 아프게 여겨질 수 있을까하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그 아픔이 전해져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것 때문에 힘들 줄 몰랐다. 어차피 영화니까. 그런데 다 찍고나서도 나중에 한참 힘들었다. 그만큼 후유증이 오래 갔다. 30년 영화를 찍었던 세월 중에 가장 힘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내가 아파한 만큼 아파한다면 나는 내가 영화를 잘 찍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 (명계남) "우리는 촬영하면서 감독이 고문 당하는 것을 봤다. 모니터하는 것, 촬영하는 것 모두 고문 당하는 느낌이더라. 모두들 그런 마음으로 힘들게 찍은 영화다. 고문 당하는 느낌이었다면 성공이다."
 
- 처음에 역할 제의를 어떻게 받았는지? 합류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박원상) "<부러진 화살>이 개봉됐을 당시 정지영 감독이 '남영동 얘기를 다룬 고문 영화를 만들건데 같이 하자'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서점에 가서 <남영동> 책을 사서 집에서 읽어봤다. 쉽지 않더라. 이걸 어떻게 영화로 찍으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반갑고, 고맙고, 좋았다. 배우로서 어떻게 표현할까,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많았는데 배우와 스태프 모두 <부러진 화살>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기에 믿고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 힘으로 버티고 한 것 같다."
 
▲ (이경영)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때 여러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과 신뢰가 바탕이 됐다. 감독과 안 지 벌써 20년이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낌도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달랐다. 보통 배우는 캐릭터에 접근할 때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일종의 연민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이번에는 연민보다는 '완성에 대한 책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명감'을 가진 캐릭터로 접근을 했다. 사실 나는 고문 내내 즐거웠다(웃음). 내가 고문하는 장면에서 적당히 하거나 상대배우를 염려해서 살살 다뤘으면 촬영은 지연됐을 것이다. 그래서 무자비하게 다루려고 했는데 오차편집본을 보면서 좀더 고문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웃음). 영화자체는 힘들고 무거웠지만 스태프, 배우들 간의 작업은 모두 즐거웠다."
 
-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다. '우리가 폭력의 시대를 청산했는가'라는 문제가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일텐데. 완성과 개봉의 시기가 대선과 겹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의도된 것인가?
 
▲ (정지영) "<부러진 화살>이 끝나자마자 작업에 들어갔다. 아마 시나리오 작업이나 촬영이 늦어졌으면 대선시기와 맞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이 속도 있게 나갔고 작품이 나왔다. 이 작품을 언제 개봉하는 게 좋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대선전이 맞다고 했다. 아마도 정치의 계절에 개봉하는 것이 더 맞지 않냐는 뜻일 것이다. 12월에 개봉할 예정인데 이 작품으로 대선에도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 영화감독이 작품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감독의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 아무래도 고문 당하는 역할이다보니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 (박원상) "원래 체력이 좋다. 모 선배는 나보고 노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웃음). 감독한테 영화 찍기 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현장에 가겠다'고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고문을 당하는 입장도, 하는 입장도."
 
▲ (이경영) "박원상은 고문 받는 걸 시간이 갈수록 즐거워하고 색다른 고문의 형태를 스스로 기대하더라(웃음). 장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컷 이후에는 코도 닦아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상전 모시듯이 고문했다(웃음)."
 
▲ (명계남) "고춧가루 고문 장면. 박원상이라는 배우가 자기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일단 가는 걸로 합의하고 찍었다. 가장 긴 게 38초."
 
▲ (박원상) "이 작품을 통해 얻은 게 많다. 그동안 연극을 게을리 하면서 떨어졌던 폐활량이 다시 늘었고(웃음). 어렸을 때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이 작품 통해 극복하게 됐다."
 
▲ (정지영) "나중에 보니까 고문을 정면으로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거의 없더라. 상업영화가 더러 있긴 하지만. 영화를 하다보니 '이렇게 힘드니까 그동안 못 찍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보다 훨씬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들도 그동안 고문장면은 어려워서 못찍었던 것이 아닐까. 박원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자리 통해 감사하단 말씀을 드린다."
 
▲ (박원상) "다시 한 번 지치지 않는 체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웃음)."
 
- 영화개봉일에 대선후보들을 초청할 계획이 있나?
 
▲ (정지영) "대선후보는 반드시 다 초청해야 한다. 물론 초청에 응할지는 모르지만(웃음). 이 작품을 대선후보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이 통합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의 미래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영화 속에서 카메오가 여럿 나오는데 어떻게 섭외했나?
 
▲ (정지영) "일차적으로는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출연을 부탁했다. 영화 속에 정치인 천정배, 고 김근태 상임고문 부인인 인재근도 나오는데 그분들은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연락이 먼저 와서 출연한 경우다."
 
- 고문실에서 근무하는 계장들의 경우 회사원 느낌이 많이 나더라. 각 역할을 설정할 때 특별히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
 
▲ (정지영) "계장들은 말하자면 쫄병들이다. 계장 외에 고문기술자 이두한, 박 전무(명계남 분), 강 과장(김의성 분) 등이 나오는데 이들의 나이와 경력 순에 따라 그들이 얼마나 세뇌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두한처럼 열심히 고문해서 인정 받은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계장들은 아직 젊으니 깊이 세뇌되어 있지 않다. 계장들이 그런 부분에서 아무래도 좀 약하다."
  
-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게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나?
 
▲ (정지영) "감독이 영화로 질문을 던지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나는 지금까지 만든 많은 영화들을 함께 공유하고, 또 내가 던지는 질문을 가지고 함께 토론하는 것을 바라왔다. 감독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걸 유지할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누가 다루든 격동의 현대사일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든 이유는 사실은 우리 국민들이 '옛날에 고문 얘기가 있었지'라고만 생각하지 어떤 고문이 어떻게 있었는지 잘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고문 받은 그들의 희생, 고통, 아픔 통해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을 모두 피상적이지 않게, 구체적으로 공유했으면 좋겠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다. 정치적 압박에 대해서도 자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 모두들 회피하려 한다. 그러나 사실을 외면하면 우리가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꼭 고문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사는 우리 모두 함께 아파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 배급사를 찾기가  현재 어렵다고 하던데?
 
▲ (정지영) "영화배급의 문제. 아직 배급사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부산영화제 끝나고 관객 반응 여하에 따라 배급사 결정될 것으로 알고 있고, 혹시 결정이 안되면 우리가 직접 배급해야 할 것이다. 메이저 배급사는 다 접촉했는데 아직 답은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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