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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피가로의 결혼' 현대적 사랑 투영한 무대연출 눈길
고양문화재단 자체제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12-10-10 12:53:03 2012-10-10 12:54:3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고양문화재단 자체제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베일이 벗겨졌다.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에 앞서 9일 기자들에게 미리 공개된 <피가로의 결혼>은 '매년 지속가능한 오페라 제작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고양문화재단의 포부가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보마르셰의 원작 연극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와 함께 만든 3대 걸작 오페라(<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 중 하나다.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 피가로와 백작부인의 하녀 수잔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백작은 '초야권(영주가 신부의 결혼 첫날밤을 소유할 권리)'을 부활시키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피가로가 백작부인, 수잔나와 합심해 백작을 혼내준다는 것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다.
 
<피가로의 결혼>은 부부간의 갈등과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 외에 계층간의 갈등과 풍자도 함께 담고 있다. 남녀간의 갈등관계가 깊어질수록 귀족계층에 대한 반발심도 커지는 이중적인 이야기 구조를 띈다. 의식이 성장한 시민계급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귀족계급의 대비가 아름다운 음악 속에 유쾌하게 그려지면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받아왔다.
 
고양문화재단의 <피가로의 결혼>은 본래의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따르되 현대적 사랑에 대한 풍자를 강조했다. 고전과 현대양식을 적절히 섞은 무대연출은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웠을 뿐 아니라 지적인 자극도 충분히 제공했다.
  
고전을 현대적 작품으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적인 세트 위에 덧붙여진 반투명막 구조물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반투명막은 때로는 엿보기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때로는 인물들의 모습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작동하며 현대사회의 사랑에 대한 풍자적 관점을 더했다.
  
특히 도입부에서부터 반투명막을 적극 활용해 공연의 콘셉트를 명확히 한 점이 돋보였다. 혁명의 기운을 담은 듯 터질 듯한 관현악 연주로 유명한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 흘러나오는 데도 여전히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는 투명한 막이 가로막고 있다. 거대한 반투명막 뒤로 등장인물들이 무대에 나와 서성이며 인물간 관계를 표현주의적인 움직임과 동선으로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공연에서도 반투명막은 다양한 형식으로 사용된다. 1막에서 백작이 피가로에게 결혼선물로 준 방의 경우 아예 방의 벽이 투명한 막으로 처리돼 있어 백작의 음흉한 심리를 엿보게 한다.
 
2막에서 백작부인 방의 경우 한 켠에 반투명막으로 만들어진 옷장이 놓여 있다. 이 옷장은 백작의 조강지처에 대한 의심과 질투를 상징한다. 백작의 방을 그린 3막에는 유일하게 반투명한 구조물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같은 구조는 남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며 권력의 횡포를 휘두르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비추지 않는 바람둥이 백작을 연상시킨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마지막 4막 정원장면은 아예 세트 전체가 여러 개의 문이 달린 반투명막으로 만들어져 있다. 나뭇가지 그림자가 비치는 반투명한 구조물 속에서 인물들은 문을 열고 닫으며 한바탕 숨바꼭질을 펼치고 해소의 국면으로 향한다.
 
흐르는 물처럼 매끄러운 모차르트의 음악에 실린 소프라노 임선혜, 바리톤 김진추 등 검증된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는 감정의 과잉 없이 현대적인 무대 연출과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 '여러분은 사랑을 아시겠지요', '아름다운 시절은 다 어디로 가고' 등 아름다운 아리아 외에 피가로의 박력있는 목소리가 돋보이는 '그대가 춤추기 원할지라도', 백작부인이 남편을 정원으로 유혹하는 편지를 수잔나에게 쓰게 하는 편지의 이중창 등 레치타티보, 중창을 통해 각 인물별 개성도 뚜렷이 표현됐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소년에서 남자로 성숙해가는 시기의 혼돈과 더불어 혁명직전의 격동적인 사회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인 케루비노의 경우가 그렇다. 가수의 노래는 아름다웠지만 나비처럼 꿀을 구하러 이꽃저꽃을 쫓아다니는 듯한 달뜬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움직임이 어딘가 둔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일부의 연기력 문제 외에 오페라 가수들과 오케스트라 연주 사이의 박자가 맞지 않아 중간중간 긴장감을 놓친 점도 옥의 티였다. 
 
작 로렌초 다 폰테, 작곡 모차르트, 연출 장영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창우, 무대.소품디자인 오윤균, 지휘 김덕기, 출연 임선혜, 정혜욱, 김진추, 최웅조, 오승용, 김재섭, 이화영, 강경이, 이미선, 임세라, 이정환, 함석헌, 정수연, 신민정 등, 연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합창 그란데오페라합창단, 오는 11~1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티켓가격은 R석 8만원, S석 6만원, A석 4만원, B석 2만원(문의 고양문화재단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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