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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몸으로 구현해낸 정치적 토론의 장
핀란드 선거와 맞물려 화제 낳은 공연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몸>
2012-10-10 18:48:16 2012-10-10 18:49:44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먼저 공연의 제목부터 정정해야겠다. '2012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참가작이자 핀란드 단체 '피지컬 컨템포러리 아트'의 작품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몸>의 제목은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몸(Our Social Democratic Bodies)>으로 바꿔 읽어야 옳다.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부담스러워 축제 사무국이 한국정서에 맞게 제목을 일부러 '순화'한 것일까? 아무튼 이 오역 탓에 뜻밖의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영문제목을 미처 보지 못한 대다수의 한국관객은 '민주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이 공연을 보기로 선택했고, 이 공연을 한글제목의 뜻 그대로 '민주적인 몸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공연'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공연이 다소 심심한 게 사실이다. 이 공연의 장르는 무용으로 분류되지만 옷 갈아입기, 간단한 체조, 막춤 등 일상적인 동작을 중심으로 삼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공연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관객들은 연출가 마이자 히바넨에게 '민주주의가 이 공연에서 어떻게 구현된 것인가'를 질문했고, 연출가의 답을 듣고 나서야 공연제목이 잘못 번역됐으며 그들이 표현한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아니라 '핀란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임을 알아챘다.
 
공연은 무대의 사방이 관객으로 둘러싸인 채로 진행된다. 일상복을 입고 사각형의 너른 터 위에 등장한 세 명의 출연자는 스스로의 움직임을 적절히 통제하며 리본체조를 하고, 규칙적인 동작으로 걸음을 걸으며, 때로 협업하고, 남녀의 동등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인 민주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한 균열이 감지된다. 예를 들면 공연 중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서로를 업어주는 동작이 수차례 반복되는데 성별의 구분 없이 사회적 예의와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이같은 도식적인 움직임은 반복되면 될수록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색상만 조금씩 다른, 깔끔한 디자인의 줄무늬 티셔츠를 수십장 입었다 벗는 동작도 이와 비슷하게 획일화된 느낌을 자아낸다.
 
 
 
 
 
 
 
 
 
 
 
 
 
 
 
 
 
 
 
 
 
결국 이들이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는 지점은 사회민주주의의 지나친 규율 강조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사회민주주의는 교육과 보건 혜택 등 장점이 많았지만 규율 또한 지나치게 많았다고 지적한다.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살 것을, 다른 사람에 비해 튀지 말 것을 사회가 암묵적인 이데올로기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공연은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에서 국회의원 선거 즈음에 초연돼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연팀 '피지컬 컨템포러리 아트'는 이 작품이 '오퍼레이션 위(Operation We)'라는 제목 하에 선보일 3부작 중 첫번째에 해당하며 과거, 현재, 미래 중 과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오역 탓이 크기는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않은 국가의 국민 입장에서는 이 공연의 내용이 민주적인 현재의 모습 혹은 미래의 지향점으로 읽힌 반면, 이미 사회민주주의를 경험해본 국가의 국민들은 사회민주주의를 개선하고 고쳐나가야할 과거로 인식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결국 "정치적인 작품을 만드려는 게 아니라 정치적 장을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가의 의도는 핀란드 외 국가에서도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공연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몸>은 핀란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연을 보고난 후 관객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속한 사회와 체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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