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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비누거품으로 만든 오페라
'누벨당스' 주역 마틸드 모니에 안무작 <소아페라>
2012-10-11 16:43:08 2012-10-11 16:44:3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안무가와 화가가 힘을 합쳐 오페라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오페라의 재료로 합의한 것은 다름 아닌 비누거품이다. '비누로 만든 오페라'라는 뜻의 무용작품 <소아페라(Soapéra)>에서는 비누거품의 조형미와 무용수의 탁월한 기량이 어우러져 마치 오페라의 음악처럼 우아한 하모니를 이룬다.
 
2012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인 <소아페라>는 80년대 누벨당스의 주역인 프랑스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가 화가 도미니크 피가렐라와 함께 만들었다. 이 작품은 배우의 몸을 붓으로, 비누거품은 물감으로 상정하고 매체간 혹은 장르간 대화를 무대 위에 그려낸다. 무용수의 몸이 비누거품과 만나 그려내는 3차원의 그림은 예상대로 무척이나 감각적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천장에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에서 장장 10분에 걸쳐 비누거품이 쏟아져 내려왔다. 가로로 10여미터, 세로로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비누거품 덩어리는 마치 미지의 행성처럼 침묵 속에 느닷없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어슴프레한 빛 아래 하염없이 거품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무대 한켠에 무용수 한 사람도 쪼그려 앉아 거품을 바라보고 있다. 한참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보니 거품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헛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만큼 느리게, 비누거품이 움직인다.
 
겉에서 보면 비누거품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용수 세 사람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두운 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마치 중력이 약한 달에서 걷듯 비누거품을 몸에 붙인 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바깥에서 지켜보던 무용수마저 거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나의 지각이 여럿의 대륙으로 쪼개어졌듯, 거대한 비누거품은 보이지 않는 무용수들의 힘에 의해 여러 개로 갈라진다.
 
비누거품이 어느 정도 잘게 쪼개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관객을 압도한다. 공연의 후반부를 맞아 무용수들이 바닥에 놓여 있던 사각형의 대형 캔버스를 들어올리자 잘게 나뉘어진 비누거품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공중을 가른다. 분위기도 180도 전환된다.
 
세워진 캔버스 앞에서 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가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독무를 추는데, 비누거품 속에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붓질하는 것처럼 유연한 몸짓이다.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아름다운 움직임의 향연에 하나둘 다른 무용수들이 합류한다.
 
무용수들은 몸이라는 붓에 물감이라도 뭍힌 듯 아까 전까지 머리까지 뒤집어 썼던 어두운 의상 대신 초록, 올리브색, 짙은 자주색의 점퍼를 입고 있다. 색색의 무용수들은 사각형의 거대한 캔버스를 회의용 테이블처럼 활용하기도 하고, 벽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서로를 방해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이끌리기도 하는 무용수들은 마치 인류의 역사를 온몸으로 그려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무용과 시각예술이 섬세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춤의 본질과 물질의 흐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한다. 서로 다른 무용수의 몸이 뿜어내는 개성적 움직임이 비누거품과 만나 각각 어떤 종류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1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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