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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한국적 몸짓에 공동체의 꿈을 담다
2012-10-25 10:29:00 2012-10-25 10:30:3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국내 대표 마임축제 '2012 한국마임'이 열리고 있는 대학로예술극장. 사회자가 무대에 오르자 소란스럽던 극장이 금세 조용해졌다. 사회자가 공연 소개와 함께 "극장은 함께 꿈 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을 보탠 후 사라지자 무대는 잠시동안 어둠과 침묵 속에 잠긴다.
 
24일 한국마임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온 관객 대부분은 경기.인천 지역의 사회복지관 학생들이었다. 지체장애우들이 많아 공연이 원활히 이뤄질까 잠시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 덕에 극장에는 공연 내내 활기가 넘쳤다. 
 
한국마임협의회가 주관하는 '2012 한국마임'은 '마임의 가능성 몸담다'라는 주제 아래  총 6일간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심포지엄과 다채로운 실내외 공연 프로그램으로 꾸려지는데 이날은 '한국적인 마임'이라는 부제 아래 <나무의 꿈>, <못된 소>, <꿈 꾸는 사람>, <허수아비> 등 실내 마임작품으로 관객을 찾았다. 
 
하얀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등장한 마이미스트 조성진은 <나무의 꿈>과  <못된 소>에서 한국적인 몸짓 속에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해냈다. 먼저 <나무의 꿈>에서는 나비를 바라보고, 새 소리에 놀라기도 하는 나무의 모습이 섬세한 손발놀림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 <못된 소>의 경우, 특유의 전통적 몸짓 외에 표정 연기가 돋보였다. 마이미스트는 소를 모는 할아버지로 분했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소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연기할 때마다 마치 전통탈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특히 관객 참여가 마임공연의 재미를 더했다. <나무의 꿈> 말미에는 관객 중 세 명이 무대로 불려나와 각각 '팔 벌린 나무', '웅크린 바위', '꽃받침 있는 꽃'을 연기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돌발행동을 한 덕분에 개성 넘치는 바위와 꽃 모양이 연출됐다. <못된 소>에서는 소를 묶어두는 데 간신히 성공한 할아버지가 기분 좋게 술 한잔 걸치는데, 소도구 없이 몸짓만으로 관객에게 술을 따르는 시늉을 하자 관객은 마시는 몸짓으로 즉시 화답했다.
  
김봉석이 선보인 공연 <꿈 꾸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실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동시대적 느낌을 풍겼다. 마이미스트는 오색찬란한 '꿈 보따리'를 메고 나오는데 그 안에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물건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잡동사니에 상상력과 몸짓이 더해지자 무대는 금세 환상의 세계로 변했다. '푸른 바다에 대한 동경', '나도 모르게 가슴에 들어온 사랑' 등 마이미스트가 묘사한 다양한 꿈의 풍경에 관객들은 흠뻑 젖어드는 모습이었다.
 
이두성의 작품 <허수아비>는 점차 사라져가는 허수아비를 통해 자연에 대한 동경을 담아냈다. 도입부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이미스트는 곧장 허수아비를 연기하는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다양한 음색을 지닌 수십개의 종으로 '도레미송',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 '나비야 나비야' 등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윽고 연주가 끝난 후 마이미스트는 나른한 표정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졸다가 꿈 속에 빠져드는 허수아비의 몸짓을 선보인다. 허수아비는 꿈 속에서 땅과 하늘, 바다 등을 여행하며 다양한 생물체들을 만나 모험을 펼친다.
 
마이미스트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선 학생들 중에는 정신과 몸이 성치 않은 아이들도 여럿이었는데, 어렵지 않은 동작을 따라하며 몸으로 대화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무대를 떠나 자리로 돌아갈 때 어떤 학생은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흥을 표현할 정도였다. 
 
'한국적인 마임' 공연들은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극장을 '한국사회에 대한 꿈이 담긴 공간'으로 잠시 환원해놓았다. 이날 마이미스트들이 한국사회를 향해 잠시 품은 꿈은 다름아닌 자연과의 소통 회복, 그리고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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