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앨범을 발표한 다이나믹듀오의 개코. (사진제공=아메바컬쳐)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다이나믹듀오의 개코가 솔로 앨범을 내놨습니다. 지난 2000년 그룹 CB MASS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했던 개코가 처음 선보이는 솔로 앨범인데요. 개코는 많은 후배 랩퍼들이 ‘리스펙트’(존경)하는 베테랑 랩퍼죠. 그런 개코가 솔로 앨범을 통해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 관심이 집중됐었는데요.
개코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놨습니다. 총 17곡이 담긴 이번 앨범을 통해 수준 높은 힙합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요. 후배 랩퍼들에게 진짜 힙합이 뭔지 한 수 가르쳐주는 느낌입니다. 한 앨범에 무려 17곡이 실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개코의 음악에 대한 고민과 진지함이 제대로 묻어나는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두 곡인데요. 첫 번째 타이틀곡이 ‘화장 지웠어’입니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대중적인 노래고요. 발매된 직후 각종 음원 사이트 1위를 휩쓸었습니다.
이 노래는 ‘밀당’을 하는 남녀 사이에 대해 그려냈는데요. 올해초 발표돼 빅히트를 기록했던 ‘썸’을 연상시키는 노래입니다. 실제로 개코는 가사에서 “넌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라 소유했다 기고만장 할 수는 없잖아”라면서 ‘썸’의 가사와 이 노래를 부른 소유와 정기고의 이름을 넣어 재치 있게 표현했는데요.
‘썸’이 히트를 한 이후에 그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비슷한 느낌의 노래들이 참 많이 나왔죠. ‘화장 지웠어’ 역시 언뜻 들어선 그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사실 ‘화장 지웠어’는 다른 ‘썸’류의 노래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는 노래입니다. 희망적이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남녀 사이를 그려냈던 다른 노래들과 달리, 개코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오던 중 남자가 뒤늦게 여자의 마음을 알고 후회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이 노래에 담았고요. 개코는 남자의 시선에서 남녀 사이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그려냅니다. 발상도 재밌는데요. 남자가 밤에 여자에게 연락했을 때 "오빠, 나 화장 지웠어"라는 말을 들은 뒤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개코가 직접 만든 ‘화장 지웠어’의 비트는 이 노래가 담고자 했던 감정을 잘 살려내주는데요.
피처링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도 돋보입니다. 소울풀한 목소리의 자이언티는 노래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지난 7월 '핫펠트'란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냈던 원더걸스 예은은 여자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노래에 스토리를 더합니다.
또 다른 타이틀곡인 '장미꽃'을 통해선 개코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맞춰가면서 자신의 색을 잃어가는 여자들을 주제로 한 노래인데요. 최고의 랩퍼로서 평가를 받는 개코는 수준급의 보컬 실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개코가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들과 견줄 만한 성량이나 기술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개코는 힘을 빼고 담담하게 표현한 보컬을 통해 진심을 담아냈습니다.
'장미꽃'은 여자를 향한 세레나데인데요. 평범하지 않은 세레나데입니다. 개코는 "많이 방어적인 니 어투 다소 공격적인 말투 대답이 너무 짧어 그거 알아 그게 매력인 거 말야 넌 시린 바람 같아 같아 같아 왠지 불안정한 네게 빠진 것만 같아 사랑이 될 것 같아 같아 같아"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냈습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여성이 바로 개코의 아내라고 하네요.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개코의 남다른 관찰력입니다. 힙합 음악이라고 하면 어떤 특징이 떠오르시나요? 대중들의 입장에선 돈, 명예, 여자 등에 대해 노래하면서 허세를 드러내는 힙합 음악들을 흔히 접할 수 있는데요. 개코의 음악엔 허세가 없습니다. 개코는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이나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얘기하는 대신 평소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코의 표현은 더 구체적이고,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코는 자신이 관찰한 세상에 대한 생각, 철학과 함께 남자로서의 욕망을 앨범에 담아냈는데요. 개코의 솔로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타이틀이 ‘레딘그레이'(REDINGRAY)입니다. 개코가 세상을 보는 회색영역(GRAY)의 시선과 붉은색(RED)으로 정의한 사람들의 잠재된 욕망을 표현한 단어죠.
이 두 가지를 주제로 개코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토해냅니다. 범키가 피처링에 참여한 '제 정신이 아냐'에선 "거울 안에 홀로 남아서 그녀는 검은 눈물을 흘려 지금 제정신이 아냐 아냐 제정신이 아냐"라면서 자유롭게 놀기 좋아하는 도시 여자의 외로운 이면에 대해 표현을 하고요, '서울 블루스 3'에선 자신이 드라이브를 하다 마주하게 된 서울의 아경에 대해, '동방예의지국'에선 만취한 상태에서의 시선과 느낌을 주제로 주말 밤 클럽의 풍경에 대해 노래합니다.
또 '세상에'에선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성형녀와 그것을 조롱하는 남자들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요, '은색 소나타'에선 가족 사이의 단절된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요. 소나타는 중산층이 선택하는 대표적인 자동차죠. 개코가 노래하는 '은색 소나타'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은색 소나타 안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은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소통의 단절을 느낍니다. 개코는 소통의 부재 속에 외로운 아버지, 가족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존재는 잃어버린 어머니, 치열한 삶 속에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의 입장을 세 파트로 나눠 이야기합니다.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희망을 확인하게 된다는 내용인데요.
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가리에 미지근한 맥주 담배 언제쯤 느껴볼까. 시가, 위스키, 뷔페, m3, 쿠페의 배기음. 애 키우느라. 가족의 배를 채우느라. 비 오지 않아 가뭄이 오래된 통장의 균열을 메우느라"라는 가사, 어머니의 입장을 그려낸 "주름살 화장은 자꾸 떠. 아이를 낳고 가족이라는 덫에 걸린 순간부터 무력감과 강한 고독함 속에 욕망은 더 불붙어. 심증뿐인 남편의 외도는 알면서 모른 척 덮어두지. 살림에 도움이 되려 해도 할 수 있는 건 부잣집 가사 도우미"라는 가사, 아들의 입장을 표현한 "불안정한 엄마와 조금 난폭한 아빠. 그들이 부양한 대가는 무겁고 그에게 건 기댄 높아. 그저 끄덕이거나 침묵하는 편이 더 편한 아침 식탁"이란 가사는 듣는 이들에게 뭉클한 뭔가를 느껴지게 합니다.
개코의 단짝인 다이나믹듀오의 최자는 '서울 블루스 3'와 '복수의 칼 2'의 피처링에 참여하면서 힘을 실어줬습니다. '복수의 칼 2'는 최자를 비롯해 얀키, 리듬파워의 행주, 지구인 등 개코의 소속사인 아메바컬쳐 소속 랩퍼들이 각자의 결심을 담은 곡이고요.
이번 앨범을 통해 남다른 관찰력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개코는 최고 수준의 랩핑으로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라임과 플로우, 펀치라인 등 랩의 요소 중 어디 하나 흠 잡을 부분이 없는데요. 날카로운 송곳으로 귀를 찌르듯,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사와 감정을 전달해내는 개코의 랩을 통해 개코가 왜 최고의 랩퍼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솔로 앨범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개코는 '레딘그레이:더 웨이브'(REDINGRAY:THE WAVE)란 타이틀로 오는 24일까지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신사장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음악의 시각화'라는 테마로 자신의 솔로 앨범과 관련된 음악적 스토리와 예술적 영감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개코의 완성도 높은 앨범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네요.
< 개코 솔로 1집 'Redingray'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톱클래스 코리안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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