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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공공성을 상실한 보건의료, 대가는 메르스였다
2015-07-22 11:18:14 2015-07-22 11:21:07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외과전문의, 의학박사)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펼쳐왔던 보건의료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동시에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의 계기였다.
 
대한민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기관수와 병상수 기준으로 지난 2008년 6.3%, 11.1%에서 2013년 말 5.7%, 9.5%로 각각 하락했다. 전체 의료기관의 90%가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민간병원 중심 의료구조다. 공공의료 비중이 100%에 이르는 영국과 99.1%의 캐나다 같은 공공의료 선진국은 고사하고, 일본(26.3%)과 미국(24.5%)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공공의료 수준은 현격히 낮다.
 
OECD 주요국들에 비해 절반조차 되지 않는 공공의료 비중은 기본 질환인 전염병조차 격리 치료할 시설의 부재를 낳았다. 환자가 생긴 민간병원만의 문제로 국한시켜 전국에 확산되도록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보건의료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의 책무가 아닌 민간 의료기관의 책임으로 떠넘기려 했던 데서 문제가 시작됐다. 정보 독점, 축소 발표, 병원 폐쇄 등 선제적 조치의 미진함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세월호 참사에 필적할 만큼 무기력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준 이 사태의 원인은 보건의료정책의 공공성 상실이 가져온 필연적 대가다.
 
민간병원에서는 수익을 위한 갖가지 검사와 과잉진료가 넘쳐난다. 엄청난 방사능 때문에 전이암 환자에게도 신중히 사용되어야 하는 양전자단층촬영술(PET CT)을 단순 건강검진 목적이란 미명하에 마구잡이로 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실 하나에 3억원의 시설비가 들고 연간 억 단위의 유지비가 드는 음압병실을 갖추길 기대하는 것 또한 헛된 희망일 뿐이다. 의과대학은 어떤가. 예방의학은 한 과목일 뿐, 졸업만 하면 돈 벌기 쉽고 위험이 적은 전문과목으로 지망자가 몰려 현장에서는 전문의 부족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모든 원인은 보건의료 본연의 가치인 공공성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그간 일관되게 지속돼 온 의료민영화 정책은 공공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 70~80년대 고도성장으로 축적된 자본이 집중 투입되면서 민간 의료분야는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반면 공공 의료분야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어, 당시 전체 절반에 달하던 공공병원 수는 지금 6%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몇 남지 않은 공공병원들은 법인화와 독립채산제에 발목 잡힌 채 취약계층의 건강안전망 역할이 아닌, 생존을 위한 수익증대 전략을 짤 것을 강요받고 있다.
 
여기에 전임 정부 때부터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 대부분이 반대하는 영리병원, 원격의료가 의료관광과 병원수출로 대변되는 의료산업화라는 경제적 명분하에 허용되려 하고 있다.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료 본연의 존재 목적인 ‘공공성’과 동떨어진 채 철저히 ‘수익’이 우선된 결과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방역의 임무를 일부 민간병원에 떠넘긴 후과는 너무도 컸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일은 국가가 존재하는 필수 이유다. 이는 의료공공성의 회복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공공의료를 국가의료의 중심에 우뚝 세우는 것만이 메르스 사태와 같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에서 보인 정부의 무능함이 되풀이 될 것 같은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하는 것은 필자만의 비관적 소심함에 기인한 것이길 바란다.
 
조승연 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인천광역시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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