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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무성의·무의지로 빛바랜 ‘이희호 방북’
관계 개선 실마리 못찾아…김정은 '구두 인사말' 전달만
2015-08-09 09:51:16 2015-08-09 09:51:16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8일 3박4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부인으로 평양에 처음 다녀온 이 여사의 이번 방북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의 조문 방북에 이어 세 번째였다.
 
이번 방북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초청과 박근혜 대통령의 동의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이 여사를 매개로 한 남·북 최고지도자의 간접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일찌감치 ‘개인 차원의 방북’으로 규정했고, 이 여사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만남도 성사되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 여사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만난 북측의 최고위 인사는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노동당 부부장급의 그리 높지 않은 인물로, 북한 역시 정치적인 의미를 두지는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맹 부위원장에게 “이희호 여사님 평양 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전달케 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 맹 부위원장은 지난 5일 순안국제공항에서 이 여사를 영접하며 김 제1위원장의 인사말을 전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이희호 여사님은 선대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6·15 선언을 하신 고결한 분이기에 정성껏 편히 모시고, 여사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해 드리라’고 말했다”고 김대중평화센터가 전했다.
 
아울러 북한은 대남 선전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이번 방문은 6·15 공동선언이 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생활력을 모두에게 새겨주는 뜻깊은 계기가 됐다”는 일반적인 논평을 내놨다. 이어 “괴뢰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보수세력의 위협공갈 속에서도 결연히 방북 길에 오른 여사의 모습에서 6·15의 뜻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의 강직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을 덧붙였다.
 
이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여사를 직접 만나거나 친서를 전달하지 않고 인사말만 전달한 것은 남한 정부의 태도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여사 편에 김 제1위원장에 대한 구두메시지나 인사말을 보내지 않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인 차원의 방북’임을 거듭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지원 의원은 본인을 비롯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의 동행을 신청했지만 정부가 불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한 정부의 이같은 태도를 보고 북한도 정치적인 의미 두기를 포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 NBA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은 초청해 환대하면서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평양에 초청하고도 만나지 않은 것은 그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외교력을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금번 이희호 이사장의 평양 방문은 남북 간 대화와 만남이 단절된 경색 국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방문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며 “이 이사장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민간 신분으로서 정부의 공식 업무를 부여받거나 수행하지 않았지만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 여사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6·15 정신을 기리며 키우는데 일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강조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이희호 여사 평양 방문 활동 모습. 사진/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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