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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후보님 단골가게는 어디입니까
2016-04-06 06:00:00 2016-04-06 06:00:00
사회부 박용준 기자
[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후보님, 선거일이 열흘도 안 남았습니다. 선거구 획정 문제로 늦게 시작되기는 했지만 거리마다 차고 넘치는 유세차와 현수막, 선거운동원들을 보니 과연 선거철은 선거철인가 봅니다.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고 골목까지 누비며 유권자들 만나러 다니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후보님도 ‘단골가게’라는 말을 아시겠지요. 무얼 사러 왔는지 눈빛만 봐도 아는 골목 구멍가게, 메뉴판에 없는 안주도 흔쾌히 내주던 막걸릿집, 괜히 분위기 잡고 싶은 날이면 찾아가던 아늑한 커피숍까지… 저마다 기준이나 사정이 다르겠지만, 단골가게는 같은 지역에서 긴 역사를 주민과 함께 하는 우리 이웃들입니다. 그곳에서는 추억을 팝니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괴물이 판을 치면서 점점 단골가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갓물주’(God+건물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불리는 임대인의 압박과 횡포 속에 문을 닫고 교외로 쫓겨나고 있습니다.일부 번화가에만 국한된 일인 줄 알았더니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 북촌, 서촌, 이대, 상수 등 점점 범위도 넓어져 이제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 곳곳으로 퍼지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1월 임대인의 강제집행으로 결국 퇴거당한 서촌의 한 빵집도 어느 누군가의 소중한 단골가게였습니다. 1997년부터 19년이나 서촌과 함께했으니 말이지요. 아르바이트생 한 명 없는 작은 가게였지만 여섯 가족을 먹여 살렸던 생활터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촌이 뜨기 시작하면서 이 빵집은 호황이 아닌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오래된 가게를 리모델링하겠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한 것입니다. 월세연체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법원은 임대인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임차인은 자영업자에게는 피 같은 권리금 8000만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임대인 자녀들이 그 빵집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열 계획이랍니다.

 

홍대입구역, 인디뮤지션, 버스킹으로 기억되는 홍대 상권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홍대 놀이터를 중심으로 벼룩시장, 클럽데이 등이 인기를 끌며, 젊은 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죠.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홍대의 상징이었던 인디뮤지션들은 비싼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연남, 망원, 합정 등지로 쫓겨났습니다. ‘홍대 터줏대감’이라 불리며 젊은이들과 호흡하던 단골가게들도 건물주에 떠밀려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대기업 옷매장, 휴대전화 대리점, 화장품 점포로 바뀌었습니다.

10년 사이 홍대 상권은 임대료가 5~10배 오른 대신 젊음의 거리라는 홍대만의 색깔은 이미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3분기 홍대 상권의 소규모 매장 공실률은 8.4%에 달했습니다. 서울 평균 4%의 두 배를 넘은 겁니다.

 

후보님께서는 건물주가 자기 건물을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는데 어찌 막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지역 어느 곳이든 문화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임대인인 건물주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작게는 건물을 크게는 그 지역을 아끼고 가꾸는 임차인이 함께 해야 합니다.

민법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를 동등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같은 관련법들은 독소조항과 허점이 너무 많아 보호는 커녕 악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2014년 서울시 조사결과, 서울지역 상가임대차 평균 임차기간이 1.7년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자영업자들이 투입한 자본을 어떻게 회수하고 지역에 자리를 잡아 단골가게가 될 수 있을까요. 자영업자 살리기에 두 팔 걷고 나서겠다는 후보님의 말씀,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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