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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喜劇)인가, 희극(戱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2016-06-15 19:15:36 2016-06-20 14:27:26
喜 기쁠 희, 劇 심할 극, 희극(喜劇)은 한자의 뜻 그대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극의 양식이다. 희극을 통해 우리는 사회 문제에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건강한 웃음까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희극의 모습은 본래의 의미인 '喜劇'보다'(희롱할 희)劇'에 가깝다. 희극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불쾌감을 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외모를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이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기보다는 오히려 외모 그 자체를 희화화하며 웃음을 유도한다. 희극이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꼬집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출처 : KBS2 개그콘서트. 사진/바람아시아
 
공영방송 KBS의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2월 28일에 방송 된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301 302'가 그 예이다. '옆집에 사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코너'라고 소개 되어있지만 이 코너 속 여자는 뚱뚱한 여자로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옆집 여자가 에스컬레이터를 밟는 순간 계단이 평평해져 무빙워크가 된다, 옆집 여자의 바람막이가 날아와 주웠는데 아홉 명은 들어갈 정도의 텐트인 줄 알았다, '먹다먹다 이제 소리까지 먹어요'라는 대사는 뚱뚱한 옆집 여자를 비하하고 희화화한 것이다. 심지어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옆집 여자조차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출처 : KBS2 개그콘서트. 사진/바람아시아
 
같은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여자 개그맨의 외모를 희화화한다. '애정표현에 서투른 안일권과 그의 마음을 훔친 '못난이' 오나미, '예쁜이' 허민의 이야기로 꾸려지는 코너'라는 소개 글에도 이미 외모를 기준으로 한 '못난이'와 '예쁜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이 등장한다. 못난 외모의 캐릭터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다른 코너들과는 달리 이 코너에서는 결국 못난이가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여전히 외모비하가 나타난다. 실제로 2월 28일 방송분에서 코너 속 남자는 예쁜이가 친구 결혼식 들러리를 선다고 말에 칭찬을 한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한 못난이에게는 '남의 결혼식 망치지 말고 넌 집에나 처박혀있어'라며 타박한다. 또한 신랑 친구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질까봐 걱정 되냐는 못난이의 질문에 때리는 시늉과 함께 '죽빵 날릴까봐 걱정된다. 이 못난아'라는, 또 못난이의 사진을 보며 '슬플 때 보고 웃으려고'라는 식의 외모비하 요소가 드러난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임인숙 교수는'어떤 시대에나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찬미는 있어왔지만, 요즘처럼 예쁘지 않다고 간주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조롱하는 언어들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버젓이 유포되지는 않았다.(임인숙, 「한국의 외모차별주의와 몸관리산업」, 2007, p.3)'라고 말했다. 이는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속 은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는'이런 현상은 외모를 근거로 사람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문화를 개인들이 직접 실천하고 재생산하도록 유인하는 장이 많아졌음을 시사한다.(임인숙, 위의 글, 2007, p.4)' 고 했다. 대중매체 속 타인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역시 개인들이 이를 직접 실천하고 재생산하도록 유인하는 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희극', '개그'라는 이름하에 타인과 자신을 깎아내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진정 건강한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다. 개인의 외모를 비하하고 평가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TV 프로그램에서 외모를 희화화하는 것 역시 단순히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이는 타인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경각심을 가질 때 비로소 조금씩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의 자존을 깎아내리며 웃음을 유발할 때, 이에 동조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청자, 희극인 모두 타인의 개성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 건강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산후 바람저널리스트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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