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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미래연구원)대량해고 막는 길은 반드시 있다
비용절감, 생산성 향상, 근로시간 단축 등…'고용완충장치'도 필요
2016-08-08 14:30:01 2016-08-08 14:30:01
조선·해운산업을 비롯한 주요산업의 기업구조조정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돼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량실업이다. 가뜩이나 세계경기 침체와 국내소비 부진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구조조정이라는 태풍으로 대량실업이 발생한다면 이는 곧 경제 불안을 넘어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량실업 없는 기업구조조정은 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분석이다. [편집자]
 
구조조정의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구조조정과 함께 어느 회사가 몇천명을 감원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대량실업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구조조정은 고용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가장 잔인한 해고라는 방식을 택해야 하는가? 해고 없는 구조조정은 과연 불가능하며, 대량실업 없는 구조조정은 불가능한 것인가?
 
정부는 올해 조선·해운산업부터 시작해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5개 업종을 대상으로 산업구조조정을 실시해 공급과잉을 개선할 방침이다. 또한 지난해 실시한 신용위험평가를 바탕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54개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대기업만 해도 2014년에 14.8%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들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없이 공급과잉 상태의 산업, 그리고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여기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급속한 기술혁신은 향후 수십년 동안 산업과 기업의 판도를 끊임없이 바꾸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철학과 방식에 따라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대량해고와 대량실업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대규모의 근로자를 일시에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의 고용조정을 시행했다. 그때는 한국경제가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다른 길이 있는지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는 부족하고, 고용불안과 임금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고착되었다는 점이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는 외환위기 당시의 고용조정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우리 기업들은 해고 중심의 고용조정을 했고, 이 과정에서 노사갈등 등 호된 홍역을 경험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경기회복 후에도 정규직을 채용하기보다 분사, 아웃소싱, 비정규직 채용, 해외 공장 이전 등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고 중심의 고용조정은 또 다른 문제도 파생시켰다. 숙련 인력의 감소를 초래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또 비정규직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라는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이들의 직업능력 향상 기회의 부족 때문에 인적자원의 질을 약화시켜서 결국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해고 중심의 고용조정이 이러한 문제를 파생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외환위기 때의 전철을 밟아야 할까? 과연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만약 산업의 경기 사이클 상 일시적인 공급과잉 때문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노사합의를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시행함으로써 대량 해고를 피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근로시간과 인력의 운용을 탄력적으로 하며 근로시간의 단축만큼 임금 감소를 근로자가 수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90년대 초 폭스바겐의 경우이다. 폭스바겐은 불황으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와 자동화에 따른 잉여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업원 규모를 1992년의 12만명 수준에서 1995년 7만명으로 대폭 감원할 계획을 발표했다. 당연히 근로자의 반대가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폭스바겐 노사는 1993년 11월 ‘고용안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약’을 체결했다. 핵심 내용은 첫째 전체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20%(주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단축하고 인건비를 20% 삭감하며, 둘째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해 초과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수당 대신 휴가로 대체하고, 소정 근로시간에 미달한 경우에는 기업이 요구할 때 초과근로를 한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이러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대량해고 없는 고용조정에 성공했다.
 
물론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해고되는 근로자가 실업자로 전락되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독일의 고용전환회사는 벤치마킹할만한 사례이다. 고용전환회사는 해고자들이 바로 실직자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들을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임시 회사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해고 근로자에게 직업교육, 재정지원, 취업 알선 등을 제공하는데 재원의 50%는 지방 노동기관이, 나머지 50%는 전 고용주가 부담한다.(한국일보 4월22일 보도) 이런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독일의 실업률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고 경제도 양호하다.
 
우리나라에도 해고 없는 구조조정의 성공사례가 있다. 한국전기초자의 경우이다. 한국전기초자는 1997년 600여억원의 적자와 1100%가 넘는 부채비율에 시달렸고, 77일간에 걸친 파업을 겪었다. 전문 컨설팅 회사인 부즈 앨런은 이런 회사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서두칠 사장은 한사람의 근로자도 해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고용불안을 안정시키고, 비용절감, 생산성 향상, 투명경영과 사용자의 솔선수범 등을 통한 노사협력을 통해 1년 ]만에 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또 앞으로도 장기간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반드시 대량해고를 동반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구조조정은 하되 대량해고와 대량실업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노사협력 그 무엇이든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해고가 불가피하다면 해고 근로자가 바로 실업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독일의 고용전환회사와 같은 고용완충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 길이 경제도 살리고 근로자도 살리는 길이 아니겠는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영등포구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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