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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값과 최저시급
2016-09-20 20:54:28 2016-09-20 20:54:28
속이 영 더부룩하다. 12시 점심시간, 후배와 밥 약속이 있지만 손가락은 이미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급한 일이 생겨서 밥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미안해ㅠㅠ담에 꼭 보자” 형식적인 문자가 오간 후 학교 매점으로 향한다. 탄산수가 더부룩할 때 좋다던데. 1200원짜리 레몬 맛 탄산수를 골라 카드를 내밀고 뚜껑을 땄다. 
 
“학생, 한도 초과인데요?” 
 
벌써? 민망하게 웃으며 천 원짜리 두 장을 드렸다. 거스름돈을 받고 카드 잔액을 확인해본다. 남은 돈 239원. 교통비가 빠졌구나. 현금으로 뽑아놓을걸. 지갑을 열어 현금을 확인해봤다. 만원 한 장, 오천원 한 장, 그리고 거스름돈 800원. 아마 지금쯤 후배와 밥을 먹었다면 명색에 선배랍시고 계산한다 했겠지. 꽤나 민망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폐 몇 장으로 생활해야 할 날들을 가늠해봤다. 아르바이트 월급은 받을 날이 까마득했다. 사야 할 전공 교재가 세 권, 점심은 대충 먹으면 되겠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겠다.
 
탄산수를 마셨다. 시계는 한시를 향해가고, 허기가 졌다. 다시 매점으로 향했다. 이번엔 모두 숫자로 보였다. 김밥 한 줄이 1800원, 샌드위치 2500원, 학식은 3800원, 그중 맛있어 보이는 차슈라멘은 4500원. 다이어트를 해볼 겸 굶을까 하다 한 개 남은 800원짜리 불고기 맛 삼각김밥을 골랐다. 이제 잔고 1만5000원. 시급 6500원짜리 교내 국제교육원 홍보 아르바이트 모집 전단지가 떠올랐다.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현재 최저시급은 6030원. 내년에는 6470원으로 7.3% 오른다고 한다. 노동계는 1만 원,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하며 팽팽한 공방 끝에 440원이 올랐다. 과외를 구하면 돈이나 시간 걱정이 없어 속 편하겠지만, 서울에서 무연고 지방 사람이 과외 찾기란 막막하다. 차라리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 쉽다. 그래 봤자 6500원이겠지만. 
 
“대학생이면 알바 할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려고 노력하면 되잖아” 
 
아르바이트만 하다 자퇴한 친구가 생각났다. 국가장학금을 포함한 장학금을 받으려면 일정한 학점이 보장돼야 한다. 수업 끝나자마자 빵집에서, 집 앞 맥주가게에서 새벽 두 시까지 6030원. 생업에 치이면 당장 6030원이 급하다. 공부에 필요한 시간은 6030원이 잠식한다. 미래의 장학금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 
 
최저시급에 희생당한 것들. 예컨대 장학금 250만원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 사회에서 그토록 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한 노력,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뒤통수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 에어컨 실외기 설치를 위해 고공에 매달릴 때의 두려움. 한 시간 노동의 대가로 6030원을 받기엔 감수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경영계와 노동계 양 측은 모두 최저시급 440원 인상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희생돼야 경영계 측이 유감스러워 하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채소 값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밝힌 6일 기준 배추 1포기 거래 가격은 8035원이다. 생활안정을 위한 1시간 임금의 ‘최저수준’을 받고 한 끼 식사를 거르면 배추 1포기를 살 수 있다. 배추 값과 최저시급, 어느 것 하나 생활안정에 도움 되지 않는다.
 
 
사진/YTN캡쳐
 
 
 
남경지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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