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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일터에 내몰리는 나이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09-27 19:31:58 2016-09-27 19:31:58
대학에 합격한 이후 3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만나 온 친구가 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다섯 살 아래의 과외학생 은수(가명)이다. 처음 만났을 때 사춘기였는지, “꿈도 없고 관심사도 없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은수는 3년간 많은 꿈을 지나왔다. 드라마, 영화 한 편 볼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이 휙휙 바뀌었다. 고정적인 목표가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대도 또 어떠랴. 시니컬하던 아이가 눈을 빛내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그대로도 예뻤다.
 
그러던 은수가 지난 6월, 기말고사를 앞두고 충격 선언을 했다. “선생님, 저 쇼핑몰이나 창업 하고 싶어요. XX이비즈니스고등학교로 전학 가서 회계도 배우고 경영 실무도 배우고 싶어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우주인이 되겠노라 말하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과연 이번엔 진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이내 어머니를 설득하더니 결사반대를 외치던 담임선생님까지 꺾고선 내게 편입 면접용 자기소개서를 들이밀었다. 어떤 과를 희망하는가? 그 이유는? 쇼핑몰과나 경영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찬 포부를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는데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지난 5월 분당의 대형 외식업체인 토다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열아홉의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토다이 측은 폭행 등 가혹 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달 경찰 수사가 종료되고 일 주일 뒤, 유가족은 김군의 핸드폰과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김군이 장시간 노동 속에서 욕설과 성추행 등의 괴롭힘에 시달린 정황을 확인했다. 김군의 유가족은 군포청년회,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와 함께 분당경찰서 앞에서 지난 8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재개를 요청했다.
 
김군이 출근할 때 거치던 군포시청 버스정류장에 꾸려진 작은 추모공간. 추모의 메시지와 수사를 재개해달라는 메시지로 가득 차있다. 사진/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제공
 
김군은 군포의 특성화고등학교에서 e쇼핑몰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고3 2학기가 되자 학교를 통한 취업 실습으로 전공과 무관한 외식업체에서 스프를 끓이는 일을 하게 된 것. 김군이 재학했던 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들을 취업실습이라는 이름 아래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터에 보내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취업실습은 이후 그대로 취업으로 이어지지만 현장실습 기간은 사실상 취업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은 학교가 배정하는 일터를 거부하면 재배정이 어렵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인다.
 
고교마다 이러한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매년 교육청 평가지표에 특성화고 취업률과 관련된 지표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취업률’ 2.5점, ‘특성화고 취업률 향상도’ 1.5점으로 100점 만점에 총 4점이 배점된다. 소수점으로 등수가 정해지는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상당히 높은 배점이다. 자연스레 고용의 질이 배제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열정페이 행태를 오는 11월 21일까지 엄중 단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던 11년부터 그간 비슷한 발표가 반복된 것을 고려하면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최근 집계한 올해 재학생 수능 응시생 수가 예년의 48만254명에서 45만9342명으로 5.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6년간 이어진 하락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낙폭이다. 학령인구 감소세와 함께 특성화고의 꾸준한 성장으로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소신 있는 선택을 책임져야 할 사회는 아직 불안해 보이기만 하다.
 
은수의 문자. 사진/정윤하
 
엊그제 은수로부터 전학이 확정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취직할거면 너는 꼭 좋은 곳에 취직해야 돼’, ‘취직이나 창업은 대학 졸업하고 나서 하는 거야, 알았지’ 등. 여러 당부가 손끝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각개전투라든지 적자생존의 사회를 알려줄 사람은 고작 과외선생이 아니어도 이미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잘해보자. 축하해’ 아이가 열아홉이 됐을 때는 정말로 무언가 바뀌길 바라며 [답장]을 눌렀다.
 
 
 
정윤하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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