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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여혐 논란’에 여성이 맞아 죽는다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10-11 09:30:39 2016-10-11 09:30:39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무심코 던진 여혐 논란에 여성이 맞아 죽는다.’ 일명 ‘버스기사 여혐 비난 논란’에 하고 싶은 말이다. 
 
 
버스 기사의 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논란은 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15일, 한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인터넷 커뮤니티 B사이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군인 양반'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글의 내용은 할머니가 위독해 휴가를 받은 육군 장병이 표를 못 구한 걸 보고 버스 운전기사가 자신이 운행하는 버스에 장병을 무료로 태워 줬다는 것이었다. 글은 인터넷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찬사를 받았다. 누가 봐도 미담으로 느낄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글은 3일 뒤,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버스 운전기사가 18일에 '버스 기사입니다. 죄송합니다'는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글을 삭제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여성이라면 안 태워줬다”며 ‘여혐(여성혐오)’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는 것이 그가 밝힌 삭제 이유다. 이 같은 일이 알려지자 중앙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은 일제히 ‘여혐 논란’을 부각시키며 기사를 쏟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네티즌들은 버스 기사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뉴스 댓글 란에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버스 기사에게 비난을 가한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비난을 가한 사람을 여성으로 떠올렸다. 
 
“버스 기사에게 비난을 가한 사람이 남성일수도 있다.”는 여성 네티즌들의 반응은 “기사에서 여성이라고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왜 난리야. 찔리냐?”는 식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공격을 퍼붓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불특정 여성들에게 향하고 있는 비난의 댓글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기자는 그저 사실에 입각해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기사에서 ‘군인’과 ‘여혐’을 강조할 때, 사람들은 군대를 겪어보지 못한 여성을 자연스레 비난의 가해자로 떠올린다. 이러한 구도는 이전에 있었던 스타벅스 '군 장병 오늘의 커피 무료 제공 행사'에 대한 여혐 논란으로 이미 익숙하기까지 하다. 
 
이번 사건에 관한 기사들은 공통된 한 가지 특징을 보인다. 어느 기사에서도 버스 기사에게 비난을 가한 사람의 정체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다. 기자들이 이것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논란은 더 뜨겁게 불붙고 있다. 기자들은 버스 기사에게 행해진 비난이 이른바 '어그로(상대방을 도발해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일 수 있음에도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글의 작성자인 버스 기사를 적극적으로 부각 시키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기자들은 그의 글을 하나하나 캡처하고 심지어 인터뷰까지 한다. 
 
이렇듯 기사에서 ‘여혐’과 ‘군인’을 띄울 때, 비난을 가한 실제 주인공은 이미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기자가 숨겨 버렸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얼떨결에 끌려나온 여성들로 채워진다. 비난의 화살은 그녀들에게 쏠린다.
 
개구리는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다. 기자들이 던진 ‘여혐 논란’도 과연 ‘무심코’ 던진 것일까? 그 돌에는 누군가를 향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란 생각이 무섭게 다가온다. 
 
 
 
이현철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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