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람아시아
‘SKY 경영학과 12학번’
중학교1학년 때부터20살 때까지, 내 책상 주위 곳곳에 붙어있던 모든 포스트잇에 적혀있던 문구였다. 왜 꼭 sky에, 왜 하필 경영학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제일 잘난 학교고 잘난 과라 생각해서 썼던 것 같다. 어찌됐든 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잘난 머리가 아니라 생각했고 고액 과외를 엄마에게 요구할 만큼 배짱 있지도 않았다. 시간만 엄청나게 투자한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공부 이외의 다른 일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수능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경영학과는 못 갈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운 좋게 받음으로써, 그 시절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꾼 내 유일한 꿈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이루긴 했다.
꿈을 이뤄서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이루지 못했을 때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까지 흡족하지는 않다고 대답하겠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만약 엄마가 된다면 절대로 내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지 않으리라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학창시절 때 받은 스트레스를 내 아이는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만큼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날이었다. 과거라서 더 과장되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생 최악의 시절임은 확실하다.
그 때는 한국의 교육구조가 잘못 되었다는 것도 학벌주의가 너무 심하다는 문제점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애초에 정말 알지도 못 했다. 그저 내가 겪는 모든 곤경과 시련이 모두 나의 태만에서 비롯된 줄 알았다. 나만 대학교를 잘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었다.
대학에 가서야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내가 겪은 시련과 곤경이 어쩌면 사회 탓일 수도 있겠다. 내 탓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 후로는 한국의 교육구조도 학벌주의도 싫어하게 됐다. 그리고 내 자신이 바로 그 구조와 사회의 피해자라 여기곤 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그 피해의 영향이 내 습관과 말투 곳곳에 묻어 나온다.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 한 내 자신이 가끔은 밉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하느님이 갑자기 내려와서 우리나라의 학벌주의가 완전히 사라지게 해줄까 라고 묻는다면 망설일 것 같다. 그나마 없는 살림에 믿고 살 건 학력자본뿐인데 이마저도 사라진다니. 이 학력자본 하나 얻자고 포기한 게 몇 개인데! 잃어버린 학창시절은 누가 보상해주나! 나는 아직 학력자본을 제대로 다 써 먹지도 못 했단 말이다.
그래서 문제다. 과열된 경쟁을 매일매일 버텨가며 기를 써서 겨우 얻었다고 느껴지는 것들이라서.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왜곡된 구조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어렵게 노력해서 얻은 권리는 그게 하찮을지라도 내려놓기 더 어렵다. 어떻게든 더 보상받고 뽕을 뽑고 싶다. 나도 피해자인데 내가 그걸 뚫고 미친 듯이 노력해서 권리 하나 얻으니까 나한테만 괜히 야박하게 구는 것 같다. 그럼 내 피해와 노력은 누가 보상해주나.
내 나이가 딱 취업 준비를 할 때쯤이라서, 요즘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고시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인턴생활 중이다. 얼굴 보는 것을 떠나서 연락하기도 쉽지 않다. 고시 준비를 했던 어떤 한 친구는 샤워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5분 안에 샤워할 수 있도록 알람을 맞춘다고 했다. 친구들과 가끔 수다를 떨어도 이런 종류의 앓는 소리뿐이다.
장하준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전체 이익의 60%를 가져가는 100대 기업은 전체 고용에 딱 4%만 기여한다고 말했다. 나는 대기업의 사원이 되기 위해, 그 4명에 속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대부분 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마 그 4명이 되고 나면 지금의 취업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재벌집착증 등 모든 문제를 잊을 듯 하다. 그 왜곡된 구조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성공했으니, 이제는 그 노력을 보상받을 차례라 생각해서. 지금의 내가 한국의 학벌주의와 교육구조를 눈 감으면서, 내 학력에 대한 보상만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래서 난 내가 무섭다. 부당한 사회 구조의 피해자인 점을 이용해, 나 자신을 정당화할 내가 두렵다. 사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잘못된 사회를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문제제기를 하기는커녕, 가끔 투정만 할 뿐 4명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욕하는 현 사회에 어떻게든 편입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4명만 성공하는 이상한 구조를 눈 감고, 근로자3명중 1명이 1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삶을 외면한 채. 내 친구가 어찌될 지, 후의 내 자식이 어떤 한국에서 살아갈 지, 사회가 얼마나 많은 폭탄들을 가지게 될 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만 그 4명이 되면 괜찮지 않나 라는 부끄러운 생각으로.
“현실주의자가 되어라.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꿔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구다. 같은 문구를 보고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 나는 이 문구를 이기적이고 못난 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현실에 타협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이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끼면 되지 않나 날 합리화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우선 기득권층이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 성공하고 보자. 성공 한 후에 이 거지 같은 사회 바꾸기 위해 나서자’. 하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지금도 겁쟁이인 내가 그 때는 얼마나 졸보 일까 싶다.
오늘도 입만 살아서 사회에 문제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투덜투덜댄다. 나중에는 그 볼멘소리마저 하지 않을 내가 두렵다.
오늘따라 내가 유난히 좀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참 못났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