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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맛지도] 카페를 빙자한 식당, 카빙당
2016-11-07 10:21:16 2016-11-07 10:21:16
저녁 8시. 밥 먹기 애매한 시간이다. 오전부터 저녁 6시까지 연강을 듣는 날에는 밥 때를 놓치기 일쑤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카빙당(카페를 빙자한 식당)’으로 향했다.
 
카빙당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카레집이다. 보통 학생들이 많이 찾는 정문, 후문 쪽과는 달리 카빙당은 한국외대 도서관 뒷골목에 고즈넉하게 자리해있다. 한국외대 도서관과 교수회관 사이 쪽문으로 나가 사회과학관 방향으로 더 올라가면 카빙당이 보인다. 아마 외대생이 아니라면 찾아가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진/바람아시아
 
 
이름 참 특이하다. 카빙당? 카페를 빙자한 식당? 이름을 짓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법하다.
 
“카페처럼 내부를 꾸며놔서 ‘카페를 빙자한 식당’이라고 지었어요. 카빙당이 발음하기는 좀 어려워도 일단 한번 들으면 까먹지 않도록 일부러 특이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카레를 주로 팔아서 중의적인 의미로 카빙당이라고 한 것도 있고요.”
 
 
사진/바람아시아
 
 
마치 카페 같은 카빙당 내부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사장님 말마따나 카빙당은 처음 들어서는 순간, 달큰한 카레 냄새 대신 은은한 커피향이 확 풍길 것 같은 분위기다.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내부와 소품들은 미대를 전공하신 사모님께서 직접 인테리어를 하셨다고 한다. 구석 테이블에 앉아 멀찍이 떨어진 메뉴판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사장님께서 옆 벽면에도 메뉴판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고개를 돌리니 아기자기한 손그림으로 가득한 메뉴판이 보인다. 사장님께서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사장님 미대 나오셨어요?” “아니요, 저는 미대는 아닌데 홍대 나왔어요.”
 
 
아기자기한 그림 메뉴.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카빙당의 주메뉴는 카레지만 함박 스테이크, 에비동, 규동 등의 일본식 메뉴도 눈에 띈다. 친구는 함박 스테이크를 시키려 했지만, 나오는데 20분정도 걸린다는 말에 망설였다. 직접 만드는 수제 함박 스테이크라 그런가보다. 함박 스테이크는 다음에 시간 많을 때 먹어보기로 하고 돈가스 카레, 새우튀김 카레를 하나씩 시켰다.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가장 저렴한 것이 5000원, 비싼 것이 6000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김이 풀풀 나는 카레가 정갈한 모습으로 나왔다. 덮밥 형식의 일본식 카레다. 국과 샐러드, 김치와 단무지도 함께 나왔다. 숟가락으로 카레를 한 숟갈 떠보니 흑미밥이다. 보통은 카레소스가 돋보이는 하얀 쌀밥을 쓰기 마련인데, 특이하다. 오랜만에 흑미밥을 먹으니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카레에는 고기가 조금 섞여있고 약간 매콤한 맛이 났다. 카레 소스에 푹 적신 밥과 돈가스, 그리고 샐러드와 김치를 한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사진/바람아시아
 
 
친구는 새우튀김 카레를 먹다가 소스를 리필했다. 메뉴판 한 켠에는 소스와 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추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6000원에 카레와 밥이 무한리필인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하고 감격하려는 찰나, 
 
 
사진/바람아시아
 
 
어라? 다시 보니 뭔가 이상하다. ‘소스가 부족하면 밥을, 밥이 부족하면 소스를 공짜로 드립니다. 언제든 부담 갖고 말씀하세요!’ 뭐야, 반대로 써 있잖아? 역시 사람은 읽고 싶은 대로 읽나보다. 그래도 사장님은 남은 밥 위에 따끈한 카레 소스를 듬뿍 부어주셨다. “저 문구는 누가 썼나요?” “제가 썼는데 재밌지 않아요? 리필은 당연히 다 되는데 요즘 학생들은 그만큼 많이 못 먹더라고요.” 우리는 카레 소스, 그리고 샐러드까지 리필해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어느새 손님은 우리만 남았고 밖은 컴컴했다. 문득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데 어떻게 장사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졌다.
 
“여기가 많이 외져있어서 처음 오픈하고 한 달 동안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훕스라이프(한국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추천글이 세 개인가 올라오고 나더니 그 때부터 학생들이 줄서서 먹기 시작했죠. 한창 잘 되다가 요새는 또 줄었어요. 외대는 학식이 워낙 가성비가 뛰어나고 훌륭해서 이 동네 식당들이 고생 좀 하죠.”
 
 
사진/바람아시아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 상쾌했다. 복작복작한 거리, 귓가를 때리는 최신 비트, 경쟁하듯 환하게 내뿜는 인공 불빛이 밤을 어지럽힐 때, 외대 구석진 뒤편으로 가보자. 고요함이 스며드는 거리 끝에 카빙당이 문을 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방주현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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