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불소추특권 뒤에 숨은 대통령의 도박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입력 : 2016-11-25 08:00:00 수정 : 2016-11-25 09:04:06
지난 10월24일 최순실의 버려진 태블릿PC에서 대통령 연설문이 발견 된 것이 세상에 폭로 된 뒤 대한민국은 마치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터져 나오는 비리에 끝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태 초기에는 '최순실'이라는 일반인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국정 전반은 물론 민간영역까지 무소불위의 환관권력을 행사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로 여겨졌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이때만 해도 국민들은 우매한 대통령이 측근을 관리하기 못하고 부적절하게 처신한 것에 대한 실망과 비난을 쏟아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박 대통령이 최태민과 그의 일가의 손아귀에 꼭두각시 처럼 놀아나는 피해자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온정적 시각은 지난 20일 검찰이 발표한 중간 수사결과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검찰은 최순실과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이 이들과 '상당 부분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을 헌법 제84조에 규정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상 불소추특권 때문에 기소를 하지 못할 뿐, 이미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범죄용의자로 공표한 셈이다.
 
헌법 제8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재직기간 중 내란·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해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헌법이 수호하는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불소추특권은 이런 의무를 수행하는 대통령을 보호하고 대내외적으로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통치행위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그 존재의 의미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갈수록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며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은 헌법적 숭고한 가치와 국민의 법에 대한 감정, 사법정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불소추특권이 박 대통령의 헌법유린행위와 불법행위에 대한 즉각적 단죄와 국정 정상화를 위한 모든 사법적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예상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거취는 크게 하야와 탄핵으로 좁혀졌다. 거국내각이나 질서 있는 퇴진은 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대통령의 지금 행태로 봤을 때 실현가능성이 낮다. 자신의 거취를 탄핵심판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이 이미 공식화된 상태에서 야권이 추천하는 총리에 의한 거국내각구성이나 하야를 전제로 한 질서 있는 퇴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에 의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됐다. 우리 사회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특검 120일, 탄핵발의와 본회의 통과, 직무정지와 헌재심판 180일, 탄핵확정 및 권한대행 60일이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고스란히 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민 전체를 혼란에 빠트리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박 대통령을 내란죄에 준해 즉시 체포·수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탄핵정국이 불러올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소리다.
 
하지만 탄핵정국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주권자인 국민에게 도전장을 냈다. 이제 사상초유의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 국민은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파괴된 국가 시스템을 다시 세우고 그들의 국정농단과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수사당국은 그들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엄중한 책임을 안았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을 방패삼았다. 대통령으로서 모든 자격과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과 법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볼모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우리는 대통령의 위험천만 한 도박을 막아야 한다. 이번 사태가 가져올 국가적 위기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탄핵은 탄핵대로 헌법에 따라 그 절차가 철저하게 이행돼야 함과 더불어 헌법정신을 기반으로 내란죄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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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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