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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맛지도] 그 서러움을 안고 당신이 왔다- ‘서른즈음에’ 인터뷰
2016-12-05 08:51:28 2016-12-05 08:51:28
큰일이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정말 술을 안 마시고는 배길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술이 당겨 건강이 걱정 되는데, 이 놈의 나라까지 안 도와준다.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내게 술이란, 몸에도 안 좋은데 쓰기는 엄청 써서 대체 사람들이 왜 마시는지 모르겠던 음료였다. 그런 나에게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알려준 것이 바로 신촌 골목에 위치한 조그만 술집‘서른즈음에’였다. 그리고 덤으로 수많은 명곡도 이곳에서 배웠다.
 
레드락과 데낄라를 섞은, ‘서른즈음에’의 마스코트 데드락. 사진/바람아시아
 
‘서른즈음에’의 마스코트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는 단연 ‘데드락(데낄라+레드락)’이다. 그 끊을 수 없는 ‘데드락’과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듣는 노래가 주는 감성 그리고 ‘서른즈음에’ 만의 기분 좋은 울적한 분위기에 꽂혀, 학교에 다니면서 셀 수도 없이 자주 이 술집을 들락날락했다.
 
 
휴학을 한 탓에 ‘서른즈음에’를 갈 기회가 없어서 그리워하기만 했었는데, 사장님 인터뷰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단골 술집에 들렸다. 
 
 
사진/바람아시아
 
-어떻게 하다가 술집을 낼 생각을 했나?
 
2000년대에 ‘오늘의 책’이라는 운동이론서만 파는 서점이 있었는데, 그 서점 밑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 카페를 술집으로 바꿔서 수익사업을 해보자고 한 친구가 제안 했다. 건물주가 반대해서 그 곳에 술집을 차리진 못 해고 다른 곳에서 열었다. 처음에는 도와만 주려 했는데 일이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동업자는 수익이 목적이었고, 나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갈등이 생겼다. 결국 동업자랑은 헤어졌다. 그래도 그만두기에는 내가 만든 브랜드 ‘서른즈음에’ 가 너무 아깝더라. 그래서 좀만 더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17년 째다.
 
-가게 이름이 참 매력적이다. 어쩌다 ‘서른즈음에’라고 이름을 지었나?
 
술집 열기 전에 도와주는 애들이랑 모여서 이름을 뭐로 할까 상의를 했었다. 그 때 누가 농담으로 ‘서른즈음에’ 어떠냐고 제안했다. 남들은 다 웃었는데, 나는 꽂혔다. ‘서른즈음에’라고 하면 뭔가 아련하고 쓸쓸하지 않나. 특히나 나는 29살 때 대학을 들어왔다. 그 때 나름 사는 게 힘들었다. 모두가 그 때면 다 힘들지 않을까 싶었고, 공감을 받을 것 같아서 ‘서른즈음에’라고 지었다.
 
-그 아련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런 분위기는 술집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만들어졌다. 우리 카피가 "그 서러움을 안고 그대가 왔다"다. 사실 간판에 다 써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 없어졌다. 내가 ‘서러움’이란 말을 정말 좋아한다.
 
-노래가 그 분위기를 더 살리는 것 같다. 노래는 직접 선곡하나?
 
노래는 17년 동안 계속 진화했다. 나름 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런 손님들이 CD나 LP를 사온다. 여기서 듣고 싶은 노래를 직접 사오는 거다. 지금은 안 모으지만, 옛날에는 CD랑 LP가1300장이 있었다. 그 중 600장은 손님이 사왔다. 우리가 트는 노래는 나 혼자 트는 게 아니라 여기 오는 사람의 피드백을 받아서 만들어 나갔다.
 
-‘서른즈음에’하면 아련한 분위기, 주옥같은 노래 그리고 ‘데드락’이 생각난다. ‘데드락’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
 
친하게 지낸 친구 중 남녀 둘이 자주 왔었다. 만날 장사 끝날 때쯤 와서, 얻어먹으려고 했었다. 그 날도 둘이 만취된 채 와서 레드락이랑 데낄라 한 잔을 달라고 하더라. 만날 공짜로 달라 하니 좀 열이 받았다.‘오늘은 골려 줘야겠다’ 싶어서 레드락에 레몬을 손으로 쥐어짜서 넣은 후에 데낄라를 부었다. 일종의 폭탄주였다. 근데 걔들이 먹어보더니 맛있다며 이거 팔자고 하더라. 그 때부터 팔았다. 사실 그날 그 여자애가 계속 데드락을 마시고 더 취한 채로 화장실에 갔다. 변기에 앉아 몸을 움직이다가 변기 뚜껑을 떨어트렸고 그게 깨졌다. 그 변기 뚜껑 하나 버린 게 데드락을 발견한 대가였다. 물론 데드락을 발견한 대가치고는 작았다.
 
-학교 근처에 술집을 내서 좋은 점이 따로 있을까?
 
내가 술집을 처음 냈던 2000년대는 지금과 달리, 문화단체나 출판사 같은 문화적인 장소가 신촌에 많이 있었다. 그 때 ‘서른즈음에’가 운동하는 학생들이나 문화?출판 쪽에 관심 있는 학생이 모이는 거점이었다. 괜히 뿌듯했다. 단순히 술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술집이 아닌 어떤 거점을 내가 운영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2010년 넘어가서는 문화단체가 다 홍대로 갔고, 그에 관심 있었던 학생들도 졸업을 해서 그런 분위기가 좀 사라져 아쉽긴 하다. 
 
-분위기는 조금 사라졌을지라도, 대학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점이 있지 않나? 
 
사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면 돈은 안 된다. 그래도 대학가 근처다 보니 익명성 보장이 안 된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막 하지 않는다. 만취해서 난동 부리는 사람은 없다. 이제까지 거칠고 나쁜 사람이 많이 없었다. 오는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 사실 원래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일단 여기 오면 다 착해진다.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이 공동체가 제어 하는 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서른즈음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께 추천하고 싶은 안주가 따로 있을까? 
 
안주는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꼽자면 먹태랑 육포가 잘 나간다.
 
인터뷰를 끝마친 후, 술집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기들을 우연히 만났다. 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 없이 몇 시간을 그들과 재잘재잘댔다. 매일 밤 그리워했던 ‘데드락’ 도 한 잔 하면서. 사는 얘기?나라얘기 등 할 이야기는 또 어찌나 많은지, 이야기는 끝도 없이 길어졌다. 한 잔으로는 부족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춥다.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이 유독 싸늘하게 느껴진다. 싸늘한 건 바람뿐만이 아니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작금의 나라 사정을 보고 있는 우리 마음은 더 싸늘하다. 이 사회란 것, 이 대한민국 사회란 것이 술을 권하니 어쩔 수가 없다. 여러모로 서러운 인생이다.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추위에 차가워진 몸도 녹이고 그 서러움도 풀 겸, "당신, 그 서러움을 안고" ‘서른즈음에’서 데드락 한 잔 어떤가?
 
 
 
임다연 baram.news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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