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사과의 조건
오늘 부는 바람은/ 시선
입력 : 2016-12-05 08:51:10 수정 : 2016-12-05 08:51:10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른다. 오감(五感) 가운데 후각을 상실한지 일주일. 먹고 말하기에도 벅찬 입에게 호흡의 기능까지 떠맡기려니 영 미안한 마음이 크다. 휴지를 몇 통씩 써가며 코를 틀어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입으로 숨을 내뱉는 탓에 입술마저 부르트기 일쑤다. 일분이 멀게 코를 풀어대는 탓에 귀는 먹먹해졌고,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눈은 감겨온다. 한줌씩 약을 집어 삼켰음에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았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진단을 내리는 의사. “급성 부비동염입니다.” 코와 이마 언저리 속 농(膿)이 가득하단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향한다. “약이 독해서 많이 졸릴 수 있어요.” 당부가 이어진다. 제 까짓게 졸려 봤자 얼마나 대단할까. 코를 꿀쩍거리며 도서관으로 향한다. 열람실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손바닥을 펼쳐 알약들을 쏟는다. 대강 설명을 듣긴 했는데 뭐가 어떤 역할을 하는 놈인지 알 수 없다. 소염제, 콧물약, 해열제…. 형형색색의 알약들을 한 번에 털어 삼킨다. 
 
경고대로 약은 강력했다. 의지와 다르게 연거푸 꺾이는 고개를 감당하기 어렵다. 무리임을 깨닫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찾아오는 순간의 블랙아웃. 눈을 떠보니 창밖이 어둑어둑하다.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황급히 핸드폰을 본다. 메신저 채팅방은 아수라장이다. 약속을 앞두고 행방이 묘연해진 조장을 따라, 덩달아 갈 곳을 잃은 후배들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황급히 사죄의 메시지를 보낸다. 육하원칙에 의거해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사과문이다.
 
“오늘 집에서 부비동염 약을 먹은 결과 졸음이 쏟아져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심을 담아 신속하게 건넨 사과는 조원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기에 적절한 대처였다. 올바른 사과를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두 개의 조건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앞서 언급한 사과문에 각각의 조건을 붙였다면, 조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서의 단두대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각각의 사례를 살펴보자.
 
1. “오늘 졸음이 쏟아져 집에서 깊은 잠에 들었지만, 이는 부비동염 약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묘하게 바뀐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접 접속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등이 대표적이다. 사과문에서의 역접 접속사 사용은 ‘변명’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2. “오늘 집에서 부비동염 약을 먹은 결과 본의 아니게 졸음이 쏟아져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적절치 못한 사과문의 또 다른 예시다. ‘본의 아닌’ 따위의 조건문을 붙였기 때문이다. 사과를 함에 있어 자신의 잘못을 축소시키려 하는 문장 삽입은 결코 옳지 못하다. 조건문이 들어간 사과문은,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더 큰 분노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적절치 못한 사과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이는 상담저서로 500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미국의 유명 상담가 ‘개리 채프먼’이 말하는 사과의 기법이다. 누구나 흔히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저지를 법한 실수를 명확히 짚어내는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다. 심지어 저자는 정통 심리학자가 아니다. 인류학 전공의 일흔 넘은 노인은, 오랜 세월 배워온 삶 속의 지혜를 제시했을 뿐이다. “늙어가는 시간은 모든 것을 가르친다.”던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격언이 어울리는 현명한 노년의 사례다.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구구절절 사죄의 마음을 담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건만, 민심은 도무지 누그러질 줄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붙이지 말아야할 단서가 가득한, 대단히 오염된 사과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굳이 전문을 모두 읽어볼 필요도 없다. 단순 몇 문장만을 보아도 대통령의 잘못된 대응 방법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중략)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 수용하겠습니다.”
-2016. 11. 04 박근혜 대통령 2차 대국민 담화문 일부 발췌-
 
말은 생각을 담는다. 변명의 여지를 남긴 글은 꼬리를 잡힌다. 대통령은 아주 좋은 사례를 남겼다. 명석한 이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제대로 된 사과문에 대한 조언 하나 해줄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 슬프기 그지없다.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힘을 가진다. 후안무치한 대통령의 사과문에는 힘이 없었다. 진심의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쓴 사과문이었다면 백만 촛불의 결집이 이루어졌을까. 불신과 무기력이 팽배한 지금,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여느 때와 다른 대통령의 진솔 된 사과였을지 모른다.
 
부비동염으로 꽉 막힌 것은 분명 코일지언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초에 불을 붙여 거리를 행진한다.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디 다음 정권은 품격 있고 올바른 사과의 철학을 지닌 이가 선출되길 간곡히 바랄 뿐이다.
 
 
사진/바람아시아
 
 
 
김태경 baram.news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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