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해피투모로우)노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사회적 관심 높아진다
은빛 장막에 비친 한국노인의 삶…시니어들이 직접 만드는 영화도 등장
2016-12-05 14:29:06 2016-12-05 14:29:06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노인의 가난과 죽음에 관한 주제는 다소 무거울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나이듦에 대해 우리는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 바로 ‘웰에이징(Well-Aging)’에 주목할 때다. 장수가 아니라 장생으로 어르신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 그 생의 의지가 건강과 행복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노인만이 아니라 중년과 청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번 해피투모로우에서는 영화속에 비친 이 시대 노인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엿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2002년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는 70대 노인의 성을 적나라 하게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각자의 배우자를 사별한 70대 노인 커플이 공원에서 만나 뜨겁게 교제를 하고 신방을 차리는 내용으로 노인들은 성을 잊고 성과 결별한 채 살아갈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노인들의 성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노인들도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보여준 영화다. 보건복지부 통계로 나타난 노인들의 성생활 실태도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26.4%가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절반 이상이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3%가 3개월에 1~2회, 7%가 6개월에 1~2회 성생활을 하고 있으며 주 1회 이상도 5.6%로 나타났다. 노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영화는 <죽어도 좋아>를 시작으로 이후 <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가 있다. 노인들의 애틋한 사랑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우리 사회는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감추기 급급했던 노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차츰 이해를 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강원도 횡성에서 잉꼬부부로 유명했던 조병만·강계열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1년간의 모습을 계절의 흐름과 함께 보여주는데 그 기간 동안 노부부의 희로애락을 담담한 시선으로 전달한다. 노부부는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사랑하는 존재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일찍 떠난 자녀들과 애지중지 키우던 개, 그리고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삶의 동반자까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겪어 왔다. 이들이 겪는 슬픔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다. 마치 사계절이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할아버지가 죽음과 가까워지던 어느 여름날, 노부부가 살던 시골집에는 강아지 6마리가 태어난다. 관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가 서툰 발걸음으로 죽어가는 노인의 병상 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제 막 삶을 시작한 강아지와 삶을 마감하는 노인의 모습이 한 화면에 오롯이 담기는데,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삶과 죽음은 서로 대치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우주의 일부로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도 덜어주지 못하는 노인들의 고통 
 
최근 노인을 주제로 한 영화 중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가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박카스란 성매매를 상징한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과 함께 죽음도 해결해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힘이 없는 노인들의 마지막 길을 열어주는 것인데 제목 그대로 ‘죽여주는’ 역할이다. 물론 성매매와 자살을 돕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정부나 가족도 노인들의 고충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죽여주는 여자>는 <죽어도 좋아>같은 부류의 영화에 비해 감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여준다. 늙고 죽는 인생의 마지막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영화에서 병상에 누운 할아버지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속내는 차마 자식에게 보일 수가 없으므로 소영은 노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이 무려 49%(2014년 기준)에 달한다. 노인의 자살률도 매우 높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OECD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만명 당 120명으로OECD 평균인 10만명 당 18명보다 6배나 높은 수준이다.
 
노인들도 꽃다운 어린 시절과 혈기왕성한 청년기가 있었다. 화려했던 인생의 꽃잎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모두 떨어지고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처지가 된다. 삶에 대한 무력감이 깊어질수록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는 욕구가 커진다. 몇푼 안되는 고령연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돌봄의 사각지대 놓인 치매노인 
 
가장 최근에 개봉한 ‘계춘할망’은 사연이 있는 가짜 손녀와 할머니가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수채화처럼 풀어낸 영화다. 배경이 된 제주도의 멋진 풍광도 볼만했다. 커다란 자극과 반전이 없으면서도 깊은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계춘할망은 치매에 걸리고 손녀가 할머니를 돌보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치매 걸려 고생하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관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월을 거스르지 못해 치매에 걸린 계춘할망처럼 평균수명은 늘고 고령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치매 환자수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인구는 68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약 127만명, 2050년에는 약 271만명으로 20년마다 약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치매환자의 실종도 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치매환자 실종자 신고 건수가 2011년에 7604건에서 2014년에는 8207건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 황혼들의 청춘찬가를 그린 인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치매환자가 된 72세의 조희자(김혜자 분)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대신 고향 친구들과 지인들이 따뜻하게 감싸고 돌보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디마프’가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이유중 하나는 노년들의 인생과 우정, 사랑, 가족에 대해 풀어가는 공감원리에 있다. 노년들의 삶이 꼰대같다고 해도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때로는 젊은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 친구간의 과거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서로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한 장면>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