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재계가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방점은 자사주 활용 목적의 인적분할. 반면 이를 차단하는 경제민주화 규제 입법이 국회 통과 가능성을 높이면서 재계의 행보도 빨라졌다. 삼성과 롯데가 분할 준비작업에 착수한 상황에서, 분할 안건으로 찬반 논쟁을 낳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임시주주총회에 관심이 쏠린다.
크라운제과, AP시스템은 25일, 유비쿼스는 26일 임시주총에서 각각 회사 분할 안건을 의결했다. 분할 기일은 3사 모두 3월1일이다. 이들은 지주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해 이날 이후 지주사 체제로 공식 전환된다. 다음 주자들도 줄을 섰다. 내달 24일에는 경동도시가스가, 27일에는 현대중공업이 회사 분할 안건으로 임시주총을 치른다. 주총 통과시 양사는 4월1일 분할해 지주사 체제로 돌아서게 된다. 또 4월27일에는 제일약품이 분할 및 지주회사 안건을 다루는 임시주총을 연다.
여론 눈치를 살피던 재벌그룹들도 행동에 나섰다. 앞서 재계 5위 롯데가 지주사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 계열사 4곳이 19일 공시를 통해 분할, 합병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고 비자금 관련 재판도 예정돼 있는 등 불확실성 투성이지만 지배구조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삼성은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특검 이후로 맞췄지만 물밑 작업은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24일에는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추가매입 및 소각 프로그램을 내놨다. 기말 배당도 전년 대비 36%(중간배당 포함) 확대했다. 자사주 소각은 이재용 부회장 등 지배주주 일가와 삼성물산, 삼성복지재단 등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강화(지분 상승)시킨다. 배당은 체제 전환 비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 헤지펀드 엘리엇 등 외부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구애 작전으로도 해석된다.
이들 기업들이 하나같이 회사 분할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자사주가 목적이다. 인적분할 후 기존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통해 의결권을 확보함으로써 체제 전환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기 때문. 실제 삼성전자는 13.2%, 현대중공업은 13.4%(이상 2016년 9월30일 기준) 등 인적분할 대상 기업들은 자사주 비율이 높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를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라고 보고, 분할 이전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신주 배정시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 관련 규제 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정부와 여권이 적대적 M&A 우려 등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신중론을 펼치고 있지만,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되고 조기 대선 가능성마저 점쳐지면서 입법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일단 현대중공업 임시주총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 현대중공업은 회사를 조선, 전자, 에너지 등 6개 회사로 분할 후 그중 로봇사업을 하는 현대로보틱스(가칭)를 지주회사에 올릴 계획이다. 무난히 주총을 통과한 앞선 회사들과 달리 현대중공업은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편법 승계라고 반발하고 있으며, 여기에 동조한 일부 야권 의원들이 자사주 규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금융계열사 지분 문제로 중간금융지주회사 입법을 기다려왔지만 자사주 규제가 국회를 통과하면 인적분할은 아예 물 건너간다”면서 “더 이상 뜸들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주회사 체제 전환의 또 다른 걸림돌인 중간금융지주법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법안 발의가 해를 넘기며 지연되고 있다. 역시 삼성, 현대차, 롯데 등 재벌 총수 일가의 특혜 법안이라며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제도 도입이 불투명하다. 재계는 자사주 규제 압박을 받는 기업들이 금융계열사 지분 연결고리를 끊고 지주사 전환에 나설 가능성도 내다본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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