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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10:50:54 2017-02-03 10:50:54
‘열정호구’라는 웹툰이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다. 힘든 취업준비기간을 거쳐 겨우겨우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더니, 열정페이를 원하는 회사가 기다린다. 비상식적인 상사의 닦달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는 부모님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나를 따라다닌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다룬 만화지만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다. 
 
취업이 두렵다. 그런데 그 과정은 더 두렵다. 태어났을 때부터 해야 할 일이 어렴풋이나마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취업준비는 도통 막막하기만 하다. 실업자 100만 시대,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흔한 취업준비생을 만나보았다.
 
열정호구 웹툰 화면 캡쳐. 사진/바람아시아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L모씨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로 30살이 되었구요. 지금은 채용 단계에서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인턴과정을 하고 있어요. PD가 꿈이어서 그쪽을 준비했어요. 
 
Q. 취업준비를 얼마나 하셨나요?
2013년 정도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복수전공을 해서 5학년까지 다녔거든요. 그래도 준비는 4학년 때부터 시작했죠. 햇수로는 올해 4년차가 됐어요.
 
Q. 스스로를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고 칭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 것 같아요?
더 이상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불구하고 남아있게 되었을 때. 상반기에 취업에 실패하고, 졸업유예를 했어요. 그때부터는 제가 원하면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유예를 했어요.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학생 신분이 더 좋다는 목소리가 있어서요.
 
Q. 그럼 졸업유예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필요하니까 있겠지만 취준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유예를 해도 수업을 많이 듣지는 않으니까요. 학교라는 공간에 오지 않아도 되는데, 아직 학생인 게 좋다니까 그냥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졸업생은 안 받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어서, 혹시라도 내가 그런 회사를 쓰게 된다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우리학교는 총 2년을 유예할 수 있는데, 꽉 채우고 졸업했죠.
 
제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졸업유예를 하면 돈을 내야 돼요. 학비의 6분의 1을 내야 되거든요. 그럼 60만원 정도. 사실 취준생한테 적은 돈이 아니죠. 근데 졸업자라는 신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학교 공부가 취업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세요?
어휴, 저는 전혀요. 학과마다 다르긴 하겠죠. 그런데 저는 복수전공한 과목이 경제인데, 그게 도움 됐던 건 딱 한번, NCS 시험을 봤을 때 경제학 선택과목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처음 공부하는 친구들보다는 제가 조금 더 편하게 공부했을 거예요. 근데 원래 전공인 영문은 글쎄요. 회사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보는 곳이 있을까? 하면 전혀 모르겠어요. 정말 문송하죠. 
 
Q. 취업준비의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PD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송PD를 하려고 하는데 그 분야가 적게 뽑기로 유명해요. 그래서 졸업 요건이 안 되는데도 13년 하반기에 SBS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제 취준의 시작이었어요. 대외활동도 그쪽도 하려고 노력하고. 일반기업 쓰는 사람들은 자소서를 한 시즌에 막 50개 100개 쓴다는데 그런 경험은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심리적 압박을 주니까. 올해는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공기업, 사기업 안 가리고.
 
Q. 나이 때문에 본인 외에도 주변의 시선이나 이런 걸 걱정해본 적도 있나요?
그렇죠. 지금 인턴 하면서도 느끼지만 나이가 많다는 게 회사에서 선호사항은 아닌 것 같아요. 위계가 잡혀있는 사회고, 선배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제가 인턴으로 들어가는데 내 선배가 24살이에요. 그럼 선배들이 나를 불편해하니까 더 그렇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진/바람아시아
 
Q. 학교 다닐 때 성적과 스펙은 어땠나요?
학점은 4.5만점에 4.11이었어요. 복전 했는데 이정도면 꽤나 높은 편이라고 들었어요. 스펙도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있는 건 다 있었고. 인턴은 안 해봤지만 한국사, 한국어, 컴활 등 기본적인 것은 다 있었죠.
 
Q. 취업준비 하는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하고 싶었던 걸)많이 못했죠. 피디 쪽은 특히 언론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돈도 없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자꾸 도서관으로 향했던 것 같아요. 가서 책이라도 한 권, 글이라도 한 번 더 써보고 등등. 그런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자기위안을 했던 것 같아요. 회사는 남과 다른, 젊지만 시야가 많이 트여있는 사람을 원하는데 저는 그런 기준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놀고 경험하기보다는 성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래서 시간은 많았는데 허비를 많이 했죠.
 
Q.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어떤 것인가요?
저는 PD 중에서도 시사교양 분야를 다루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목표가 잘 안되고 실패하니까 목표가 흐려지는, 그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걸 받아들이고 난 이후에는 취준을 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힘들었죠. 되게 좁은 문구멍에다가 나 자신을 갈아서 쑤셔 넣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삶의 가치관과 이런 것들이 뭉개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 번 시작하고 나니까 쉽게 놓지도 못했어요. 
 
Q. 면접 보면서 가치관이 변형된 경우도 있나요?
많았죠. 그 기준으로 하면 완전 저는 거짓말쟁이죠(웃음).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는 못해요. 왜냐면 나중에 얘기하면서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데 요만한 사실을 부풀리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생각했던 걸 왼쪽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렇죠.
 
영화 '열정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장면 캡션. 사진/바람아시아
 
Q. 인턴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제가 지금 하는 인턴 말고, 저번에 방송국 조연출 인턴을 한 번 했었어요. 그 때 인턴을 시작하면서 든 생각은 너무 열악하다는 생각. 삼주에 3-4일 집에 가는 걸 상상할 수 있어요? 프로덕션을 통해서 선발된 많은 조연출 인턴들이 그런 생활을 해요. 근데 저는 PD라면 소구성이 어필되는 걸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트렌드에 민감해야 되고, 그러려면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조연출 인턴은 그런 게 없었어요. 납득이 가는 상식적인 일상생활의 영위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취업 준비기간 동안 경제적인 면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처음에는 과외나 알바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그 시간에 취준 관련한 뭔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 뒀죠. 그 이후에는 등골브레이커가 됐어요. 자취비, 식비, 핸드폰비 까지.
집에서 지원을 못 해주는 상황이었다면 진짜 힘들었겠죠. 저는 그래도 감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학비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새벽 두시에 알바 마감하고 다음날 자소서 쓰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Q. 취업 준비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많이 뽑았으면 해요. 많이 뽑는다는 게,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요즘은 일자리의 유동성이 커져서 이직도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일을 했을 때 자신을 담금질해서 더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일자리가 적죠.  
 
Q. 마지막으로 취준생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다 힘드니까 뭐 어쩌겠어, 하는 체념 같은 것 같아요. 힘내라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잖아요.’ 이런 느낌. 그런 느낌으로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L모씨는 인터뷰를 끝내고 담담하게 웃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면서는 “저도 아직 취준생을 벗어난 게 아니니까요. 이번에는 꼭 돼야 하는데.” 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을 나와도, 좋은 학점을 유지하고 복수전공을 해도, 인턴 과정을 거쳐도 취업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언젠가 반드시 자신을 담금질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렇다면 ‘취준생’이라는 이름이 지금보다는 덜 버겁지 않을까.


라 진 주 바람저널리스트  baram.news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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