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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탄핵전문가 김기춘의 논리에 따르면
2017-02-20 06:00:00 2017-02-20 06:00:00
박근혜 대통령 법률대리인 중 최고 에이스는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다. 재판부에서 “이제야 헌법재판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헌재 변론기일에 태극기를 두르고 나오거나 탄핵반대집회에 참석해 영어로 연설해 관심을 끄는 서석구 변호사 등과는 수준이 다르단다.
 
이런 이 전 재판관은 지난 14일 열린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13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애국심으로 조국과 국민에게 헌신해 온 그녀의 애국심을 존중해 따뜻한 시각에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와 결혼했다는 레토릭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는 취임선서문도 결혼식장의 성혼선언문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통령과 나라의 관계가 결혼이라면, 그건 분명히 계약결혼이다. 사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계약기간이 정해져있다. 중간에 이혼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박 대통령과 이 나라는 이혼재판 중이다. 헤어지자는 쪽과 헤어지지 말자는 쪽의 줄다리기다.
 
‘좀 무능했을 진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고의로 부정을 저지른 증거도 없다’는 게 박 대통령 측의 논리다. 쉽게 말해 “바람을 피웠나? 때리기를 했냐?”는 거다.
 
반면 탄핵을 촉구하는 쪽은 “무슨 소리냐? 고의로 수많은 부정을 저질렀고 무능하기 까지 하니 하루도 더 살기 싫다. 이혼 끝나면 민형사 소송도 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이혼재판은 엄격한 유책주의가 아니라 파탄주의의 성격을 크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십 수차례의 변론기일에서 헌법재판관들은 대통령 대리인들에게 “이곳은 형사재판정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재판정은 대통령과 국민의 신뢰가, 무슨 이유든 간에, 얼마나 훼손됐는지 따져보는 곳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만약 그 직으로 복귀할 경우, 잔여 임기 동안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도 헤아려보는 곳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로운 글 하나가 신동아 3월호에 실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 소추위원장을 지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난 2008년 동창회지에 기고한 ‘대통령 탄핵소추의 의미’라는 글이 발굴된 것이다.
 
“공직자 지휘 감독을 잘못하거나 부정비리를 예방하지 못해도 탄핵사유다”, “탄핵사유는 기소 가능한 형사적 범죄일 필요는 없고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부패행위를 한 경우, 공중의 신뢰를 깨뜨리는 경우도 탄핵 사유가 된다.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도 탄핵사유가 된다”, “형사재판과 반대로 탄핵심판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는 유죄 내지는 유책 추정을 원칙으로 한다” 등
 
검사,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국회 법사위원장,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을 지낸 당대 최고 전문가의 탄핵론이다. 악의가 없이 무능하거나 게을러도 결혼 생활은 유지될 수 없다는 파탄주의 논리의 결정판으로, 한 쪽의 고의적인 책임이 있어야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유책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유책주의적 논리로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그 관점에서 봐도 대통령과 이 나라의 관계를 끝낼 때가 됐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몰랐다” “이 정도 수준인지 몰랐다”는 게 박 대통령 주장 아닌가? 그 주장을 받아들여도 결과는 똑같다. 24일 최후변론기일에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헤어지자.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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