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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으려면
총괄전문기관 신설을 통한 제품안전 관리역량 집중 육성 및 종합대응 체계 구축해야
안전책임의 최종 주체는 소비자 정보와 상품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기업이 돼야
2017-04-03 08:00:00 2017-04-03 08:00:00
지난달 30일,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소비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손해를 입힌 제조사에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소비자가 제조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했음에도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물에 결함이 없다는 입증책임을 기업이 지도록 했다. 즉 앞으로 소비자가 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 등의 책임이 사라진 것이다. 개정 이전에는 피해자가 제조물의 결함,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해야만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제조업자를 알 수 없을 때는 유통업체 등 공급업체가 배상책임을 부과하도록 했다. 악의적인 기업 범죄로 인한 참사를 막기 위해 소비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기업의 책임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끊임없는 국내 소비자 피해사건
최근 우리나라에서 생활용품으로 인한 피해의 빈발이 이 같은 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해성분이 가습기 분무와 함께 체내에 유입돼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폐 질환에 걸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대표적이다. 흡입독성에 대한 평가 기준의 부재와 제조사의 안전 불감증 및 안전성 검사결과 허위표시로 인해 벌어진 이 참사는 피해 발생 후에도 원인 규명의 어려움과 진위 논란으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따르면 올해 2월 말을 기준으로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463명으로 이 가운데 사망자는 1143명에 달한다. 제품의 조기 출시 전략에 따른 허술한 위해성 평가로 인해 폭발 사고가 발생한 삼성의 ‘갤럭시 노트7’과 제조사의 고의적인 소비자 기만을 엿볼 수 있었던 ‘폭스바겐 사건’ 역시 큰 논란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가습기 살균제 논란 물질이었던 메틸클로로아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치아졸리논(MIT)이 일부 헤어 미스트 제품에서 발견됐다. 지난 2월 24일 한국소비자원은 헤어 미스트에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표기됐다는 위해정보가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돼 조사한 결과, ‘밸리수 프로틴테라피 퍼펙트 미스트’에서 CMIT·MIT가 각각 각각 5.1㎍/g, 1.6㎍/g 검출됐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개정된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는 물에 씻어내는 일부 제품에 한해 CMIT·MIT 사용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대상이었던 제품은 씻어내지 않는 형태였음에도 CMIT·MIT가 검출된 것이다. 이 제품에 대해서는 판매 중단과 환급 조치가 내려졌다.
 
우리나라 소비자 안전관리체계 문제점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정부의 미흡한 소비자안전관리체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3월 28일 국회에서는 ‘소비자 안전관리체계 확립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사)소비자와 함께, (사)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공동주최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소비자 안전관리체계 점검과 확고한 시스템 구축 방안, 현행 안전체제 분석과 종합적 대응체계의 필요성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여정성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품안전’ 측면에서 현행체제를 분석하면서, 지정품목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제품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정품목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고, 지정품목 간 규제수준 차등에 있어 일관성이 부재하며, 유사품목에 대한 소관 부처 간 규제에 있어 혼란 및 규제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 교수는 개별제품의 안전 관리 제도가 진입규제, 시장규제, 안전표시제도에 집중되어 있을 뿐, 잠재적 위험의 발굴, 시장 감시, 초기대응을 위한 사건분석단계에서는 관련 제도가 불충분 또는 미비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가기술표준원의 전기생활용품안전법, 식약처의 약사법과 화장품법의 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각 제품은 안전확인제도, 유해화학물질 함유제품 신고, 제조업 신고 및 품목허가제도 등의 진입규제 제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안전성 문제가 발생할 시 해당 제품의 자발적 리콜, 리콜 권고, 리콜 명령 등을 수행하는 시장규제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며, 안전정보제공 차원에서는 제품별 표시 기준과 실증의무 등에 관한 규정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현재 미관리 제품의 잠재적 위험성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제도는 마련되어있지 않으며, 위해 우려 제품군 선정을 위한 화학제품 유통조사와 우려가 제기되는 화학제품과 화장품에 대한 긴급 위해성 평가 제도가 유사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감시 단계에서는 안전기준의 준수 여부를 소속공무원이 조사하거나 제품의 위해성을 재평가하는 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제도의 시행이 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응 초기 사건분석 단계 역시 제품의 위험성 감지 이후 위험성의 내용과 수준의 신속한 규명과 확산 방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후속 조치의 적절성과 신속성이 전적으로 관리기관의 역량과 의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재희 한국소비자원 위해정보팀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정부 부처별로 안전 업무가 분산되어 있어 소비자 안전을 위한 종합적인 시장감시 및 대응이 미흡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현 소비자 안전관리체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이 별개로 관리됨에 따라 용도 변경으로 노출 경로가 달라져도 이에 맞는 독성을 심사하지 못하는 등 부처 간 관리 사각지대가 생겼으며, 제품 개발 단계에서 사용 특성 등을 고려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나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이러한 관리체계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소비자 안전관리 체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소비자안전관리체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일관성 없는 안전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정성 교수는 “관련법 차원에서 제품안전 관련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일관된 철학이 필요하며, 관리주체 차원에서는 총괄전문기관 신설을 통한 제품안전 관리역량 집중 육성 및 종합대응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관리제도 차원에서도 사전예방제도 마련 및 소비자안전센터 강화를 통한 교차점검, 신속대응 시스템 활성화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안전문제의 성격상 횡적 업무분담이 필요할지라도 최소한 이를 통합하고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김정숙 제주대학교 생활환경복지학부 교수 역시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제도적 측면은 많으나, 안전체계가 여러 분야에 산발되어 있어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비자 안전체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하는 종합대응체계를 위해 소비자안전문제를 전담하는 독립전담기구를 정부부처로 설치해야 하며, 강력한 소비자피해구제제도를 확립하고 소비자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관련 법 제도의 규제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서비스산업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여 ‘서비스안전기본법’과 관련 법 제도의 제정과 사후구제대책이 필요하며, 안전과 환경과 같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행정규제, 형사규제, 민사규제의 균형 있는 운용과 민사규제의 강화가 필요하며 소비자안전에 대한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었다. 신종원 서울YMCA 본부장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사건을 예방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국가가 동인을 제공해야 하며, 개별입법의 강화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사건을 예방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국가가 동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은숙 소비자와 함께 공동대표도 “결론적으로 안전책임의 주체는 소비자와 관련된 정보와 상품의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며 “앞으로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틀로 소비자 문제에 접근해야 하며, 기업이 안전책임의 주체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헌진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과장은 “각 부처의 규제품목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소관 법령에 따라 품목군별로 총괄 관리하는 품목군별 담당부처 조정안을 마련하겠다”며 “부처 간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 ‘제품안전정책협의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품목군별 담당부처를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최재희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안전센터 위해정보팀장은 “소비자위해 감시시스템이 현존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자안전센터의 조직인력과 운영의 개편, 비관리대상제품과 같은 안전사각지대에 대한 소비자안전센터의 감시기능이 확대되기 위해 법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천 명의 피해자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소비자 피해사건인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이익에 눈이 먼 기업과 그런 기업을 사전에 감시하지 못하고 소비자의 안전을 관리하는 체계를 미리 구축하지 못한 정치권의 무책임 등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대참사이다. 정부와 기업을 신뢰한 소비자가 더는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미흡한 소비자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옥시불매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소록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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