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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사혁명4.0이다)④복수노조 시대…노조도 변해야 산다
기존 정규직 중심 강경노선에 일대 변화…존립근거 놓고 노조간 경쟁체제 돌입
2017-04-27 07:00:00 2017-04-27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구태우 기자] 노동조합도 변화의 물결 앞에 섰다. 변화를 재촉하는 가장 큰 외부 요인은 복수노조 설립이다. 복수노조는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가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2011년 7월1일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다. 정규직 중심의 투쟁 일변도와 권력화 관행에도 일대 타격이 됐다. 
 
지난 2월21일 LG디스플레이에 제2의 노조가 설립됐다. 'LG디스플레이 우리노조'(이하 2노조)로 기존 한국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조(이하 1노조)와는 다른 단체다. 2노조 설립을 주도한 문병준씨는 2006년 LG디스플레이에 입사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구미공장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과정에서 국소배기장치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가 내부고발자로 몰렸다. 생산공정에서 분진이 떠다니는 걸 목격하고 이를 문제 삼은 것인데, 이후 업무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기존의 1노조는 문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LG디스플레이는 구미와 파주사업장의 전체 직원 3만2000명 중 2만6000명이 1노조에 가입돼 있다. 주로 문씨와 같은 현장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문씨는 1노조가 조합원의 안전과 관련된 의무를 게을리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들도 1노조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쟁사인 삼성디스플레이보다 성과급이 낮고, 공장의 설비를 OLED라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여기서도 1노조는 제 목소리를 못 냈다는 게 직원들의 주된 불만이다. 2노조의 조합원은 현재 200여명으로, 1노조와 비교하면 지극히 열세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복수노조가 설립되면서 1노조의 긴장감도 커졌다. 기존의 독점적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직원의 처우 불만을 귀담아들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그간 노동계는 '춘투(春鬪)', '하투(夏鬪)'라는 용어에서 드러나듯 으레 철마다 치러지는 투쟁으로 상징됐다. 물론 이런 투쟁이 전체 노동자의 권익과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을 탄압하는 정치권과 재계에 경종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청년과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 등 약자를 위한 투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민들이 점차 노조를 '귀족노조'로 인식하며 노동계의 투쟁에 무관심해진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양대 노총의 숙제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5년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63만6249명, 한국노총은 84만3442명으로 전년보다 0.8%, 0.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민노총과 한노총에 가입하지 않는 조합원은 44만5603명으로 전년보다 3.4% 올랐다. 양대 노총이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사진/뉴스토마토
 
복수노조 도입 후 정규직 중심의 투쟁에서 벗어나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015년 말 롯데마트에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1노조)에 이어 민주노총 소속 노조(2노조)가 생기면서 노사관계에 일대 변화를 맞았다. 1노조가 노조 가입 대상을 판매·진열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행복사원)까지 확장한 것이다. 그간 정규직만 1노조에 가입할 수 있었지만, 2노조 설립으로 조합원 경쟁이 붙으면서 가입 조건이 완화됐다. 현재 1노조 조합원수는 10배 이상 늘어난 6000명에 달한다.
 
1노조는 정규직 중심의 노선을 버리고 비정규직의 처우까지 챙겼다. 지난해부터 비정규직도 병가와 경·조사 등에서 사측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2노조가 올해부터 시간당 임금을 지난해(6400원)보다 28.3% 오른 8210원을 요구하자, 1노조는 임금 인상 범위를 놓고 셈법이 복잡해졌다. 기존 정규직 중심의 단일노조 체제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유종철 롯데마트 2노조 조직국장은 "복수노조 설립 후 1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분명한 성과"라고 말했다.
 
한화테크윈(옛 삼성테크윈)은 2015년 삼성에서 한화로 매각된 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한화테크윈지회(2노조)와 한화테크윈 노조(1노조)가 갈등을 겪고 있다. 2노조는 2014년 말 삼성이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매각하자,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1노조가 회사의 입장만 대변하고 고용승계 등 노동자의 문제는 등한시하면서 2노조의 존립 근거가 분명해졌다. 현재 교섭권은 1노조에 있지만 2노조도 교섭권을 얻기 위해 사측과 부단히 싸우고 있다. 이미 노조원 수에서는 2노조가 1노조를 넘어섰다. 사측으로서는 기존 노조를 활용해 직원들의 불만을 적당히 무마하던 관행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김철희 노무사는 "복수노조 도입 후 어용노조가 탄생하는 등의 문제점도 있었지만,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과 노동운동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며 "노조가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노조가 경쟁에서 도태되느냐 새로운 의제를 발굴할 수 있느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호·구태우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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