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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사혁명 4.0이다)⑤4차 산업혁명 태풍 눈앞에…노사관계 재정립 절실
동원시스템즈·유한킴벌리·SK하이닉스·코웨이 '노사문화' 선도
2017-05-04 07:00:00 2017-05-04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구태우 기자] 4차 산업혁명이 가시화되면서 노사관계도 전환점을 맞게 됐다.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을 동반하며, 특히 공정이 자동화되는 제조업은 대규모 인력 조정이 우려된다. 때문에 일자리를 놓고 노사간 갈등도 이전보다 심화될 전망이다. 사측 입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장밋빛일 수 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잿빛이 될 수 있다.
 
대립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임금피크제와 저성과자 해고 지침 등을 각 사업장에 내려보내자 노사분규 건수가 113건 발생,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근로손실일수는 190만9788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였다. 노동계는 극한 대립의 시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노사관계가 갈등으로만 치달은 것은 아니다.
 
동원그룹 계열사 동원시스템즈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건 2013년으로 올라간다. 동원시스템즈가 협력업체인 대한은박지를 인수하면서 인수업체의 노조도 합병됐다. 한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들어서면 으레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놓고 조합원 확대 경쟁 등 노노 갈등이 점화된다. 하지만 산업용 포장재를 생산하는 동원시스템즈에는 노노 갈등이 없다.
 
회사와 두 노조 모두 양보하며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2013년 합병 당시 대한은박지 노동자들은 전원 고용 승계됐지만, 후속조치로 구조조정을 의심했다. 인수업체의 설비와 기술만 흡수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사례는 업계의 흔한 일이었다. 수년간 경영난을 참고 견딘 노동자들에게 기존 경영진이 회삿돈을 횡령해 구속된 경험도 불신으로 작용했다. 그간의 사정을 잘 알던 조점근 동원시스템즈 대표이사는 노조와의 대화를 직접 챙겼고, 교섭 기간에도 현안을 직접 확인하며 노조 위원장과 소통했다. 대표이사가 노사 교섭이 끝나고 교섭안 조인식을 할 때만 얼굴을 비치는 다른 기업들과는 대비된다.
 
2014년 동원시스템즈는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하며 '2조 2교대'에서 '3교대'로 근무체제를 개편했다. 회사는 인력 추가 채용이,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삭감이 부담이었지만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이견을 좁혔다. 2015년에는 상여금의 일부를 기본급에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정년 연장에 합의했고 임금피크제도 도입했다. 통상임금과 교대제, 임금피크제 등 민감한 현안에서 모두 합의를 이룸으로써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됐다. 
 
조항진 동원시스템즈 새노조 위원장은 "이전 회사와 달리 경영진이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조도 협력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협력하고 있다"며 "노사관계 특성상 노조와 경영진 간 입장 차이는 있지만 매년 직원의 처우가 개선되고 있어 조합원들도 큰 불만은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유한킴벌리는 '노사'라는 말보다 '노경'(勞經)이라는 말에 친숙하다. 노동자를 경영의 파트너로 대한다는 의미에서 '노경관계'를 중시한다. 매달 열리는 임원회의에는 10명의 노조 간부들이 참석한다. 2014년부터 회사는 노사 간 신뢰 구축을 위해 대표이사가 진행하는 경영설명회를 수시로 열고 있다. 지난해까지 27차례 경영설명회가 열렸고, 2660명의 직원들이 참석했다. 회사의 모든 정보에도 직원들이 접근할 수 있다. 2014년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뒤로 직원들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에 연동돼 성과금을 받고 있다.
 
노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배척하는 모습은 SK하이닉스와는 거리가 멀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출연,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지원하는 임금공유제 도입에 합의했다. 노조가 임금 인상분의 10%를 출연하면 회사도 같은 금액을 내는 방식이다. 2015년과 지난해 각각 66억원이 47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 임금 인상에 쓰였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총 123곳이다. 전체 사업장 수 대비로 보면 극소수지만, 이들 기업이 실천하는 노사관계 재정립은 경영성과 차원에서도 재계에 주는 울림이 크다. 섬유업체인 휴비스 전주공장은 노사가 합의해 4조 3교대로 근무를 전환해 주당 근로시간을 6시간 줄였고, 팀별로 노사협의회를 분기별로 열어 현장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 결과 연평균 93억원의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코웨이는 아예 비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정규직보다 높게 책정한다. 복리후생 측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없앴다. 코웨이는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점을 감안해 관리자의 80%를 여성으로 채웠다. 경남은행도 매년 도급료 5%를 인상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이끌어낸 사례로 꼽힌다. 
 
노사가 협력해 얻는 효과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경영위기 등 노사협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빛을 발한다. 경영위기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교대제나 임금체계를 개편해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피할 수 있고, 경영진 역시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을 던다. 최근 정치권은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마련에 돌입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앞으로 노사는 근로시간 단축을 두고 협력이 더욱 절실해진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혼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전략실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적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기존처럼 대립만 할 경우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병호·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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