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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4차 산업혁명과 심상정의 공약
2017-05-26 06:00:00 2017-05-26 06:00:00
 지난 대선에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 목소리로 강조한 공약이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이끌어 내겠다는 것. 하지만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던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서조차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토론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의(定意)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18세기, 영국, 증기기관이 바로 그것이다. 1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제공했다.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고 현대인이 누리는 거의 모든 사회제도가 이때 생겼다. 노동자가 등장했고, 막대한 에너지는 노동 강도를 더욱 증가시켰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위협한 것과 달리 인구 증가 속도보다 물자의 생산이 더 빠르게 늘어났다. 물자의 증가. 이것이 바로 1차 산업혁명의 결과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혁명이다. 토머스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조지 웨스팅하우스 같은 기술자들은 발전소와 전기 장치를 발명했다. 영화, 라디오, 축음기, 전등이 발명되었다. 세탁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여성 직업의 50퍼센트가 가정부였다. 세탁기가 등장하자 가정부라는 직업이 사라졌으며 가사노동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돈을 벌게 되자 남아선호사상이 줄어들었다. 1차 산업혁명이 생존에 필요한 물자의 공급을 늘렸다면 2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인 셈이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혁명이다. 혁명인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지나고 보니 혁명이었다. 3차 산업혁명은 유통에서 물성(物性)을 배제했다. 음악은 LP나 카세트테이프 또는 CD 같은 고체 대신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정보로 유통된다. 디지털 정보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욕구와 가치를 창출했다. 가족, 직장과 노동조합, 지역공동체 같은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개인의 욕구가 직접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영향을 끼쳤다.
 
1차 혁명에 증기기관, 2차 혁명에 세탁기, 3차 혁명에 인터넷이라는 대표 기술이 있다면 4차 혁명에도 대표 기술이 있을까? AI, IoT, 자율자동차와 드론이 4차 산업혁명일까? 자칭 4차 산업혁명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융합이라고 말한다. 현실 세계(오프라인)과 가상 세계(온라인)의 융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한 단어로 O2O로 표현한다.
 
그런데 1·2차 산업혁명만큼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술과 사회는 독립된 것이 아니다. 기술혁신만으로 산업혁명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 기술 수준만큼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3차 산업혁명은 완성되지 못하였으며 4차 산업혁명은 말의 잔치에 불과할 수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온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공약들은 진지한 성찰의 결과라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권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주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대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다.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관련 공약이 “서둘러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해서 빨리 따라잡자는 추적경제 발상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산업분야로 한정된 변화가 아니다. 기술변화와 똑같은 정도로 사회 전반의 근본적 변화를 동반한다”고 주장했다. 맞다. 그래야 산업혁명이다.
 
심상정 후보는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인간’에 주목했다.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가 줄어들어 삶이 고단해질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소수에 전유되지 않도록 기본소득과 같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은 엄청나게 풍족하고 편리해졌다. 동시에 불평등은 더 심화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문재인 후보의 공약대로 기술과 산업 분야에 한정된다면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업만 있고 사회가 없으면 안 된다. 기술만 있고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그의 기치와는 정반대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직 다른 나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도 4차 산업혁명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차분하게 진행하면 된다. 혁명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참여로 온다. 이를 위해 심상정 후보의 다른 공약도 주목해야 한다. 바로 동네마다 과학센터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산업혁명보다 과학센터가 먼저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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