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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다음 과제는 '임금체계 개편'…노동계 대승적 양보 절실
고용안정 얻는 대신 임금부담 최소화…"노동시장 이중구조 고착화 해소해야"
2017-06-13 17:54:35 2017-06-13 18:01:58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흐름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정을 얻는 대신 임금부담을 최소화시켜 기업의 부담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제는 노조다.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것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심해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시작도 못한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3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사례 발표회를 열었다. 새 정부 들어 경제단체가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공식행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재인정부의 기조에 반대하다 한 차례 역풍에 휩싸였던 만큼 정부를 대상으로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제안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총 관계자는 "임금체계 개편은 유연한 노동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필수 과제인 만큼 노사 합의를 통해 활성화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늘릴수록 매년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국내 기업 임금체계 현황조사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기준 연공급제를 운영하는 기업은 71.8%에 달했다. 조사대상인 100인 이상 사업장 6600곳 중 4736곳이 연공급제 임금체계를 운영했다.
 
임금체계는 연공급, 직무급, 직능급 등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근속연수와 학력 등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연공급제는 호봉제가 일반적이다. 호봉 테이블에 따라 매년 임금이 상승한다. 직능급은 직무 수행능력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고, 직무급은 직무별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임금체계 별로는 지난해 기준으로 연공급(71.8%)이 가장 많고, 직능급(28.6%), 직무급(26.8%) 순이다.
 
연공급제 중심인 기업의 임금구조는 '부익부 빈익빈'을 유발시키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화시킨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연공급제로 인해 기업은 정규직 사용을 꺼리고 비정규직 사용을 선호한다. 유노조 사업장의 경우 매년 교섭을 통해 경영성과와 생산성에 관계없이 임금을 일괄적으로 인상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경영계가 이른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사용의 필요성을 주장한 원인도 연공급제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5년 논문 '임금체계 통계조사의 현황과 역사적 변화 연구'에 따르면, 연공급제는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뿌리가 내렸다. 당시 대기업 사무직을 중심으로 연공급제를 도입했는데, 민주화 과정에서 생산직 노동자들도 호봉제 적용을 받게 됐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연평균 7~8%의 고도 성장을 이어가던 1980~1990년대와 달리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지금에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고용안정이 더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대 2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비정규직에게 연공급제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5년보다 17만3000명 증가한 644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32.8%에 달한다. 이중 49만5000명은 기본급 없이 100% 실적으로 임금을 받는 특수고용직노동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은 2년5개월, 월 평균 임금은 149만4000원이다. 비정규직의 처참한 실상에, 노동계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임금체계 개편을 거부하는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도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방향에는 동의, 특히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방향에는 공감하고 있다. 2015년 9월15일 노사정이 체결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에 따르면 노사정은 "임금체계 개편 방향은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노동계의 동의 없이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완화를 밀어붙이면서 노사정 합의문은 결국 파기됐다.
 
노사정 합의에도 사업장에서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공급제 운영 비중은 2.7% 줄어드는데 그쳤다. 특히 단위노조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거부감이 커 난항에 빠졌다. 노동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단위노조의 경우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자칫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확대될 수 있어 임금체계 개편 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기업의 성과 평가에 대한 노조의 불신이 큰 것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민간 부문으로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전환에 따라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인건비 부담을 완화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노동계의 대승적 양보를 전제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공공·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이어가기 위해 숙련을 인정하는 방식의 직무급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노동자를 줄이기 위해 노사정 모두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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