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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법관대표회의 상설화 수용·의혹 재조사는 거부(종합)
"책임자로서 참담…법관들 사법행정 적극 참여 필요성 인정"
"윤리위도 블랙리스트 존재 부정…법관 PC 조사 전례 없어"
2017-06-28 18:09:00 2017-06-28 18:09:0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양승태 대법원장이 28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국단위 일선법관회의체가 꾸려지게 됐다. 그러나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등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권한을 위임하라는 전국법관들의 요구는 거부했다. 양 대법원장으로서는 조사권 위임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비켜간 셈이다.
 
전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인정하고, 관련자들 문책을 양 대법원장에게 권고했지만,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와 같이 부인했다. 전국 법관들은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사항 등에 대한 대법원장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에 게재하는 동시에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발송했다.
 
양 대법원장은 글에서 “지금 우리는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로 불신과 논란에 휩싸여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까지 깊은 심려를 끼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일이 사법행정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 최종 책임자로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에 관한 법관들의 참여 기구로서, 선출된 법관들로 구성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결했고, 저 역시 평소 법관들이 사법행정에 더욱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 왔다”며 “향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해 법관들의 의사가 충실히 수렴·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하자는 결의를 적극 수용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 동안 법관사회 내부에 법관인사를 비롯한 사법행정 전반에 관해 불만이 누적돼 왔고 그에 대한 개선 요구 역시 높다는 점을 다시금 절감했다”며 “이번과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법행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구성, 역할 및 기능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양 대법원장은 그러나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가조사 권한 위임 요구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는 “진상조사위원회는 한 달 가까이 치밀한 조사를 진행했고, 2000쪽에 이르는 기록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현안과 관련한 몇 가지 점에서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다만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해서는 조사위원회에 제출된 특정 문서 이외에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별도의 파일이 따로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을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구성된 조사기구가 독립적인 위치에서 자율적인 조사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면, 비록 그 결과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에 대해 다시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어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해당 컴퓨터를 관리하는 법관 외의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는 성격의 문서들이 상당수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 충분하고도 구체적인 법적·사실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더구나 이제껏 각종 비위 혐의나 위법사실 등 어떤 잘못이 드러난 경우조차도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그의 동의 없이 조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자료 생성과 보관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 조사한다는 것도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강제할 수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법관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냉철한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전날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권고한 이규진(55·사법연수원 18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와 고영한(62·11기)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주의 권고에 대해서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평가와 권고를 존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조만간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양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전국법관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서경환(51·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중심으로 전국법관들의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조만간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에 대한 전국법관들의 의견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법원 고위간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결론을 내린 가운데 입장 표명을 앞두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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