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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응능주의(應能主義)와 개세주의(皆稅主義)간 조화가 필요하다
2017-07-31 08:00:00 2017-07-31 08:00:00
미국 금융시장에서 ‘오마하(Omaha)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투자의 귀재로서 글로벌 유명세를 타는 대부호다. 2017년 3월에 버핏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그리고 전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부유한 자산가로 선정됐는데, 그의 재산은 원화로 환산할 경우 무려 8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기부천사로도 유명한 버핏은 그가 가진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할 것임을 서약했는데, 기부의 대부분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할 것임을 밝힌 것은 유명한 일화다.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버핏은 2011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한편의 칼럼을 통해서 세금분야에서도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슈퍼리치를 감싸는 정책을 중단하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는 자신이 낸 소득세의 세율이 17.4%였는데,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20명의 소득세 평균세율은 36%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미국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자신이 평균적인 중산층에 부과되는 세율보다도 낮은 세율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는 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으며, 부유층의 자본소득에 적용되는 실효세율이 적어도 중산층이 내는 소득세율 이상은 되도록 세율 하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부자증세를 상징하는 버핏세라는 유명한 용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슈퍼리치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버핏이 오히려 본인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부자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버핏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하는 자선사업가라는 평판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박애주의의 실현을 위해 이러한 주장을 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의 투자철학을 살펴보면 자선사업가라는 평판과는 다소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손해를 보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에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다고 알려져 있다. 돈의 흐름에 민감하고 때때로 탐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가 기부와 부자증세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인 부의 집중화가 결국은 자본주의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게 될 가장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많은 국가에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더 이상 외면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의 확보여부가 경제체제의 모든 구성원에게 중대한 위협요인이 된다면 사회지도층이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제시해야 한다는 버핏의 생각은 결국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증세에 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과세표준 5억원을 초과하는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기존 40%에서 42%로 2%포인트 인상하는 방식으로 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의 최고세율 인상이 예고되고 있으며, 자본시장의 영역에서도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관찰된다. 소득세제에 있어서 전반적인 누진구조의 강화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응능주의(應能主義, ability-to-pay principle)의 관점에서 보면 누진구조의 강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이 많다. 세금부담의 능력이 높은 계층에 대해 부담능력에 상응하게 과세함으로써 세수를 확보함과 동시에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버핏세의 경우도 과세부담능력이 좋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을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 것이니 누진구조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응능주의 과세원칙과 동질성을 가진다.
 
한편 증세의 방법에는 세율에 의존하는 방법 이외에도 세원을 확대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세율이 변하지 않더라도 세금부과대상이 많아진다면 조세수입은 늘어날 것이다. 개세주의(皆稅主義) 조세원칙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누진구조를 강조하는 응능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세원확대를 지향하는 개세주의는 조세저항이라는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개세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선거에서 패배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증세수단으로서의 활용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지만 복지지출의 급증가능성과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소득세수 비중을 감안할 때 개세주의에 따른 소득세원의 확대는 향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진구조의 강화와 더불어 보편증세의 확대라는 조세원칙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한 노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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