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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입' 윤태영, 박하맛 나는 첫 에세이집 '아·재·미' 출간
아는 게 재주라서 미안합니다/위즈덤하우스 펴냄
2017-10-24 14:54:07 2017-10-24 14:54:07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이자 ‘입’으로 유명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도 작성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생애 첫 에세이집을 펴냈다. 책 제목은 <‘아는 게 재주라서 미안합니다’-심쿵 아재 불출 씨의 박하 맛 일상 탐구>.
 
지난 2009년 평생을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큰 충격을 받은 윤 전 대변인의 몸과 마음에는 병환이 찾아들었다. 무너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때부터 인생, 인간관계, 행복에 관해 일기처럼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를 7년 만에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에세이집이다. 미대를 졸업한 딸 윤혜상이 책의 삽화를 보탰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평범한 아재(아저씨) ‘불출 씨’다. 소심하면서도 이중적이고, 순진하면서도 미련 많은 인간형인 ‘불출 씨’는 저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책은 ‘이중성, 일상, 정치권 이야기, 모순, 상념과 느낌’이라는 총 다섯 가지 주제에 따라 152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거창한 표현과 화려한 문장 대신 사람과 인생, 세상을 대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겼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넘어 또다시 웃고 울며 살아가는 법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자꾸 쓰고 기록하다 보면 내가 세상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기쁨과 홀가분함이 교차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두려움도 있다. 어쨌든 또 하나의 마침표를 이렇게 찍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리라”고 소감을 밝혔다.
 
윤 전 대변인은 노무현정부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을 지냈다. 의원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1988년, 당시 제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정치인 노무현을 처음으로 만났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이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를 펴낼 당시 집필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이후 노무현캠프 외곽에서 방송원고·홍보물 제작 등을 도왔으며, 2001년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캠프에 몸을 담았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대통령의 복심’, ‘대통령의 입’, ‘노무현의 필사’ 등으로 불렸다. 저서로는 ‘대통령의 말하기’, ‘기록’,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바보, 산을 옮기다’ 등이 있다.
 
책 속 밑줄긋기
 
지난날을 돌아볼 때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가슴에 멍으로 남은 흔적도 있습니다. 불출 씨도 한때는 그것을 지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러지 않습니다. 자칫 자신의 인생도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표와 소인」중에서
 
사람들이 불출 씨에게 충고합니다. “이젠 우왕좌왕 말고 일관되게 살아요.” 불행한 불출 씨,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지금껏 우왕좌왕으로 일관되게 살아왔어요!”…「우왕좌왕 인생」중에서
 
“ㄱ은 말이 너무 많아서 싫어.” “ㄴ은 허풍이 심해서 못마땅해.” “ㄷ은 잘난 척하는 게 꼴불견이야.” “ㄹ은 일을 대충대충 해서 맘에 안 들어.”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한마디를 합니다. “나는 까다로운 당신이 가장 싫어요.”…「사람의 취향」중에서
 
군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간 불출 씨. 아들은 불출 씨에게 할 말이 많은 듯싶습니다. 내무반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전합니다. 군대 생활 경험이 없는 불출 씨는 지루할 뿐입니다. 아들은 치킨도 먹고 피자도 먹습니다. 하루 종일 먹고 이야기하다가 복귀합니다. 한번 면회하면 몇 달을 버틸 힘이 생기나 봅니다.…「짧은 면회, 긴 기다림」중에서
 
불출 씨는 고민도 많고 후회도 많습니다. 비관주의자로 사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그래도 성격은 끝내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격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낙관주의의 시작입니다.…「저주받은 성격」중에서
 
어쩌면 불출 씨에게 남아 있는 숫자들입니다. 스무 번의 생일. 마흔 번의 설날과 추석. 여든 번의 계절. 두 차례의 자녀 결혼. 두 번의 상주. 어쩌면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단 한 번의 비극. 그리고 사라지는 위의 모든 숫자들.…「어쩌면 불출 씨에게 남아 있는 숫자들」중에서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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