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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양심적 병역거부도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입니다"
"병역만 '국방의 의무' 이행 방법 아니야…다양한 형태 존중해야"
"병역거부는 대체복무 하겠다는 것…병역기피로 보면 안돼"
2017-11-09 06:00:00 2017-11-09 09:46:43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산 백종건 변호사가 지난달 24일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변호사 재등록 신청 거부 통지를 받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그의 재등록 청구에 적격의견을 냈으나 대한변협은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며 등록을 거부했다. 현행 변호사법은 출소 뒤 5년 동안 변호사 등록을 못 하도록 규정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성명을 통해 "기본권 인권 옹호를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회의 역할을 망각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국제적으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이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시점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첫 병역거부자로, 약 200여 명의 병역거부자를 위한 무료 변론에 힘썼던 백 변호사를 만나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에 근거한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성서에는 원수들을 포함해 이웃을 사랑하고, 칼로 든 사람은 칼로 망해 무기를 들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헌법 39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국방의 의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병역만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공익법무관은 임무 특성상 일반적인 전투병과 다르지 않나.
 
법무관들은 법조인들이 모두 하고 싶어 하고, 갔다 오면 취직이 잘돼 여자연수원생들이 부러워한다. 법무관은 법조인 계층 내에서 혜택으로 보는데 나라고 그 장점을 몰랐겠나. 4주 훈련이라고 해도 양심상 군 복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역거부가 실제 양심에 따른 것인지, 단순 기피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병역 기피와 거부는 다르다. 기피는 의무를 안 하겠다는 무조건적인 의사고, 병역거부는 대체복무라는 대안이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군 복무기간보다 길고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길게 대체복무 할 바에는 군대 가겠다'는 생각이 들게 대체복무제를 잘 만들어야 한다.
 
백종건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기본적 인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홍연 기자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경우 전투병 대상자들의 인력 이탈 우려가 있다.
 
현재도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의무 경찰 등 전환·대체 복무 인원이 한 해에 4만 명이 넘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대체 복무를 원하는 사람은 1년에 5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대체 복무 기간을 길고, 수행 업무를 어렵게 만들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게 불가피하다면서 들었던 논거가 우리나라 군대가 열악하다는 거였다. 이 문제는 병역거부자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할 일이다.

대체복무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나라가 있나.
 
대만은 예전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막상 도입되고 나니 역전됐다. 대체복무자가 성실하게 중증 장애인을 간호하고, 지진이나 재난이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 문제는 근본적으로 소수자의 문제다. 소수자 인권문제를 다수가 진행하는 여론에 온전히 맡겨서는 안 된다. 대체복무제로 인력 유탈이 우려된다면 심사제나 쿼터제를 두는 등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변협 등록심사 때 어떻게 소명했나.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제사회에서 지적했듯이 기본적 인권으로 존중받아야 하고, 대체복무제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실형을 살게 된 거라 비난 가능성이 없거나 낮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법상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라도 등록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변협이 판단권을 행사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로 보호되고 있음을 선언해달라고 했다.

‘실정법 준수’라는 변협 주장에 어떻게 반론하겠나.
 
대한변협은 등록 적격 결정을 낸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의견을 뒤집어 권한이 없다는 소극적 태도로 대응했다. 변호사법 개정 연혁을 보면 82년도에 변호사 등록에 관한 권한을 법무부에서 변협으로 넘겼다. 자치권을 부여하기 위해 권한을 이관했는데, 변협에서는 자치권이 없다고 하면 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직역 단체는 고유한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회원의 이익을 지키고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 먼저 나서서 권한이 없다고 하면 다음에 부당한 상황이 발생해도 보호 못 하지 않겠나.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병역을 거부하면 변호사 등록이 취소될 걸 알고 있지 않았나
 
나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일지 몰라도 계란은 살아있고 바위는 죽어있다. 살아있는 것이 죽어있는 바위를 넘을 수 있다고 누군가가 얘기를 해줬다.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힘들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이 문제가 소송으로 가면 기각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소송에서 승소하기 상당히 어렵다. 옳다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변협이 재량권을 행사해 등록 거부를 결정했는데 이걸 뒤집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했던 모든 게 쉽지 않았고, 희망을 품고 문을 두드려 보는 건 오랜 습관과 같다. 법원에서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청원할 생각이다.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많이 나오고 있다.
 
판사들이 무죄 판결을 하기 시작한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보고 알게 된 것에 따른 결정이다. 더 많은 공부와 연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국제인권법에 대한 판례나 규범들이 영어로 돼 있어 재판 업무로 바쁜 판사들이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서울지방변호사회연구회 등이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제적으로 보호된 권리고, 이 권리를 보호하는 조약에 대한민국이 예전부터 가입된 것을 인지한 거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지난 5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옥중 기자회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중이거나 형을 마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어떤 반응이었나.
 
우리나라는 병역거부자를 광복 이후로 계속 수감해 왔고, 국제기구에서 해결이나 권고를 제안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계속 무시하고 있다. 사법부가 좋은 결정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에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주고,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권고해달라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나라 현직 부장검사도 "정말 중요한 인권을 침해한다고 국제사회가 여기는 것 같다"며 "피부로 느끼고 있는 점을 한국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뭐라고 말 하고 싶은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수감되기 전까지 200여 건의 벙역 거부 사건을 무료 변론했다. 여러 판사분께 호소할 수 있었고, 좋은 결정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변호했던 병역거부자들이 '의미가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록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변화를 위한 디딤돌이 될 거다.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더라도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기다렸으면 좋겠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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