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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반도체사업장 근로자 뇌종양' 업무상 재해 첫 인정
"사업장 근무가 뇌종양 발병 유일 원인…퇴직한지 7년 됐다고 인과관계 부정할 순 없어"
2017-11-14 12:11:52 2017-11-14 15:45:42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직 후 7년이 지나 뇌종양으로 사망한 삼성 반도체 근로자 고 이윤정씨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대법원이 사실상 인정했다.
 
삼성 반도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 소송에서 백혈병이나 다발성경화증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예는 있었지만, 뇌종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이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 삼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이씨가 사업장에서 약 6년 2개월 동안 근무하는 동안 여러 가지 발암물질(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비전리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발암물질의 측정수치가 노출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장기간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 등 기타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역학조사 당시에는 이씨가 근무한 때부터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시점이었다”며 “발암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 등에 대한 노출 수준이 측정되지 않았더라도 이씨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역학조사 자체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사업장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후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한 것을 보면 이러한 사정 역시 이씨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모세포종(뇌종양)은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종양이 빠른 속도로 성장·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뇌종양 발병에까지 이르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씨가 퇴직 후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와는 다른 취지에서 이씨의 유족인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1997년 5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온양사업장 반도체 초립라인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6년만인 2003년 7월 퇴사했다. 재직 중 이씨는 주로 4조 3교대 또는 3조 3교대로 일했는데,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늘어날 때에는 1일 12신씨가 연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퇴직 후 2004년 결혼해 자녀 2명을 낳고 주부로 생활하던 중 2010년 5월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2년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2012년 5월 결국 숨졌다. 이씨는 사망 전 자신의 뇌종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산재요양을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뇌종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유족들이 소송을 냈다.
 
1심은 “이씨가 삼성반도체 근무 당시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점, 역학조사 당시 화학물질 일부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뤄진 점, 이씨의 작업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 외에 뇌종양 발병 원인이 될 만한 개인적 요인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씨의 뇌종양과 반도체 사업장 근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위험요인들에 대한 위험·노출 정도가 높지 않은 점, 뇌종양은 수개월 만에 급격한 성장을 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씨는 퇴사 후 7년이 지나서 뇌종양 진단을 받은 점 등에 비춰보면 업무와 발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을 뒤집었다. 이에 유족 측이 상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뇌종양의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상당 기간이 경과한 이후에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악성도가 낮은 신경교종이 발생하였다가 수년의 기간을 거쳐 악성도가 높은 교모세포종으로 변화하는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퇴직 후 7년이 경과했다는 사정만으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명확히 기준을 제시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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