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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술탈취', 산업계 최대이슈 부상
경제부처 수장들 잇달아 "근절" 선언…내년초 범정부종합대책 발표
2017-12-12 16:54:49 2017-12-12 17:56:11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관행으로 치부됐던 대기업의 기술탈취에 정부가 철퇴를 내린다.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강구될 예정인 가운데, 수사기관이 나서 기술탈취를 조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움직임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12일 공정위에 따르면, 본부 차원에서 기술유용 행위 조사기능을 재정비 중이다. 기술탈취와 관련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해당 지방사무소가 맡았는데, 이달부터 본부의 기업거래정책국 제조하도급개선과로 이관됐다. 김상조 위원장은 11일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인들을 만나 "기술탈취가 넓은 영역에서 벌어지는 게 문제"라며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경찰청 등과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정위는 내년 중기부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경계하고 나선 건 공정위만이 아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LG와의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 방향 중 하나가 공정경제"라며 "기술탈취와 납품단가 인하 등은 혁신기업의 의지를 꺾는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기술탈취는 반드시 뿌리 뽑을 것"이라며 일종의 적폐로 규정했다.
 
정부가 동시다발적으로 '기술탈취'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기술탈취가 그만큼 근절되지 않는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도급거래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기술탈취 유형은 대기업이 납품업체가 보유한 기술을 뺏거나 무단으로 도용하는 것이다. 피해 기업은 거래가 끊길까 신고를 못하는 게 일반적이며, 설사 당국에 신고하더라도 구제되는 경우는 드물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기업 기술이 특허인지, 또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했는지 두 가지 모두 입증이 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건이 법정으로 갈 경우 피해기업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기술탈취가 사실상 사각지대로 방치되면서, 피해 기업이 청와대에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27일 중소기업 비제이씨는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7년간 소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사기관이 조사하게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12일 현재 4000여명이 동참했다. 중소기업이 장기간 소송을 통해 기술탈취를 입증할 수 없어 공정위나 경찰 등 수사기관이 나서 피해를 입증해달라는 게 청원의 내용이다.
 
피해 기업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소송시 대법원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데다, 승소 여부도 불확실하다. 막강한 자금과 법률전문가로 무장한 대기업을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대·중소기업 특허무효 소송에서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지난해 71.9%에 달했다. 비제이씨는 14년 동안 현대차에 납품하다 2015년 거래가 끊겼다. 현대차가 비제이씨의 독성유기화합물 정화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비제이씨는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것도 어렵지만 수년이 걸리는 소송을 버텨낼 여력이 없다"며 "공정위나 경찰이 기술탈취 여부라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에스제이이노테크(SJIT)는 ㈜한화가 자사의 핵심기술을 탈취했다며 1년8개월째 다툼 중이다. 현재 경찰과 공정위가 조사 중이다.
 
한편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거래 관계에 있는 기업의 기술자료 등을 원사업자 또는 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지난 8일 발의했다. 현행 법은 원사업자가 기술자료를 유용할 경우에 한해 기술탈취가 성립해, 입증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제 의원의 설명이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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